[단독]스토킹 가해자 81% 접근-연락금지 안지켜...피해자 보호 '구멍'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9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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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5일째인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역내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5일째인 19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역내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지난해 12월 A 씨는 다툰 후 여자친구 B 씨 집을 찾아가 온몸에 기름을 뿌린 뒤 라이터를 들고 “분신하겠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협박했다. B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은 A 씨에게 ‘피해자 인근 100m 이내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A 씨는 이틀 뒤 경기 시흥시 피해자 집을 다시 찾아갔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100m 이내 접근 금지’나 ‘연락 금지’ 등 사법당국이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내리는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들이 대놓고 이를 어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가해자 위치 추적을 도입하고 유치장 구금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가해자 감시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접근·연락 금지 통보하자마자 접근
동아일보 취재팀은 19일 대법원 판결 검색 시스템을 통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21일 이후 이 법에 따라 형이 확정된 공개 판결문 156개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사법당국이 접근 금지나 연락 금지 등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를 내린 가해자 57명 가운데 해당 조치로 스토킹 범행을 멈춘 가해자는 3명(5.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46명(80.7%)은 조치 후에도 피해자를 찾아가거나 협박하는 등 범행을 이어갔다. 8명(14.0%)은 판결문상 범행 지속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긴급응급조치 및 잠정조치를 어기고 범행을 이어나간 비율이 스토킹을 멈춘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접근·연락 금지 통보를 받자마자 어긴 가해자도 상당수였다. 지난해 11월 C 씨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자 문자메시지 수천 통을 보내고 여자친구 직장 앞을 찾아가며 스토킹을 했다. 법원은 C 씨에게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전화, 메시지 전송 금지’ 조치를 내렸다. C 씨는 통보를 받은 지 1분 만에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 반성, 연락 중 하나라도 실행되지 않으면 지인들이 피해를 볼 것’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D 씨는 올 2월 피해자 집에서 말다툼을 하다 다리미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며 피해자를 위협했다. 출동한 경찰이 긴급응급조치 중 하나인 ‘접근 금지’를 결정했지만 D 씨는 경찰이 떠나고 30분 만에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흉기로 자해하며 협박했다.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기기 부착해야”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 재발을 막으려면 경찰의 가해자 위치 추적을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한 경우 사후 조치는 가능하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6월에도 경기 안산시에서 스마트워치를 받은 피해자가 60대 남성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가해자들도 경찰이 지켜보지 않는 걸 알고 있기에 스스럼없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이라며 “가해자에게 추적 장치를 착용하도록 해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해야 한다”고 했다.

구속영장 없이 한 달까지 가해자를 유치장에 구금할 수 있는 잠정조치 4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 1~7월 경찰이 신청한 잠정조치 4호 500건 중 검찰 청구를 거쳐 법원에서 최종 승인된 건 221건으로 절반이 채 안 됐다. 지난달에도 서울 은평경찰서가 옛 여자친구를 5개월간 스토킹하다가 흉기로 협박한 남성에 대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반려했다.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스토킹 범죄자 중 구속 송치된 비율은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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