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 마리 배달시키면 한화로 6만 원이 넘습니다. 꼭 먹고 싶을 때만 시켜 룸메이트 4명과 나눠 먹고 있어요. 외식은 3주 째 안 했습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학 중인 박모 씨(27)는 23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8년 차 유학생이지만 이렇게까지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 씨는 “올 초와 비교하면 학비는 800만 원 넘게 올랐고,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도 100만 원 이상 더 든다”며 “더 이상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죄송해 아르바이트를 더 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유학생 “생활고로 유학 그만둘까 고민”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09.7원으로 마감하며 13년 6개월 만에 1400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까지 1100원대였던 환율이 크게 오른 데다(원화 가치는 하락) 미국 현지의 물가 급등까지 겹치면서 유학생들은 허리끈을 바짝 졸라매고 있다. 식비를 줄이고, 월세가 싼 곳을 찾아 학교에서 차로 약 1시간 떨어진 장소로 이사하는 등 ‘짠 내’ 나는 유학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미국의 한 주립대에 다니는 김모 씨(25)는 2주 전부터 한국에 있는 고등학생에게 ‘화상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다. 당초 교내 아르바이트를 구하려 했지만 생활비 부담을 느낀 유학생들이 대거 몰리면서 교내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김 씨는 “교수가 e메일로 모집 공고를 보내자 10분도 안 돼 마감됐다”며 “2명 뽑는데 30명 가깝게 지원자가 몰렸다”고 전했다. 유학생들은 학생 비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교내 아르바이트 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미국 유학 4년 차인 이정훈 씨(27)는 학교 앞 아파트에서 지내다 최근 학교에서 차로 1시간 가량 걸리는 셰어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올 초 1200달러였던 월세가 지난 달 1500달러로 올랐는데 환율까지 오르면서 한화로 매달 70만 원을 더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치안까지 안 좋은 지역으로 옮기고 나니 오갈 때마다 지치고 불안하다”며 “생활비도 올라 이 상태로라면 유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환율 때문에 유학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대학생 주성원 씨(25)는 “연간 학비가 1000만 원 넘게 올랐고, 월세도 매달 100만 원 가까이 올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국내 대학원 진학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 미국 취업 직장인은 “수입 늘어”
최근 입국 전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폐지됐지만 환율 때문에 해외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추석 연휴 때 미국 서부 여행을 계획했던 직장인 한영호 씨(30)는 “왕복 비행기 값만 300만 원이 넘는데 경비도 생각했던 금액보다 200만 원 가까이 더 들어 여행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현지에서 일하며 달러로 급여를 받는 한국인들은 환율이 오른 덕을 보고 있다. 미국 현지 증권사에서 일하는 박모 씨(28)는 “두 달 전부터 번 돈을 대부분 한국으로 보내 저축하고 있다”며 “같은 금액을 바꿔도 과거보다 15% 가량 많은 원화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제약회사에 다니는 이모 씨(26)는 “아낀 생활비를 한국으로 보내 환전하면 성과급 정도는 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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