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1명과 작업 중이었는데 갑자기 ‘땅 땅 땅’ 쇠파이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20∼30초 만에 검은 연기가 지하주차장을 덮쳤고, 저는 비상계단을 통해 간신히 나왔지만 동료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30대 하역 작업자)
26일 오전 대전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지하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피해자가 많았던 것은 하역장에 의류, 종이 등 가연 물질이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불도 빠르게 번지고, 유독가스와 연기도 많이 나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 유독가스 등으로 수색 난항…하청·용역업체 직원 피해
불은 이날 오전 7시 45분경 지하 1층 하역장 인근에서 시작됐다. 연기는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졌고, 이를 본 행인이 119에 신고했다. 소방당국은 신고 6분 후 현장에 도착했으며,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오전 7시 58분 인근 2∼5개 소방서의 소방력이 총동원되는 ‘현장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오후 1시 10분경 초진이 완료됐지만 사망자가 7명이나 발생한 후였다. 희생자 4명은 여자탈의실, 휴게실 등에서 발견됐고 3명은 화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꺼번에 나왔다. 물류배송, 환경미화, 시설관리 등을 담당하는 하청·용역업체 직원들이 영업 준비 중 참변을 당한 것이다. 소방 당국은 “모두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하역장에 의류, 종이 등 가연 물질이 많이 쌓여 있어 불이 빠르게 번졌고 유독가스도 많이 나왔다고 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검은 연기가 건물의 거의 모든 구멍에서 나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소방과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27일 오전 합동 감식을 진행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또 스프링클러와 제연시설 등 소방 시설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정밀 조사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아 “중대재해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조사 내용을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 3시간 분량 CCTV 확보 분석 중
경찰은 현대아울렛 측으로부터 3시간 분량의 사고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영상에는 오전 7시 45분경 한 남성이 1t 화물차에서 물건을 내린 뒤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장면이 담겼다고 한다. 이 남성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곧바로 화물차 인근에서 순식간에 연기와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경찰은 해당 남성의 신원을 확인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 등에 따르면 올 6월 민간업체에 맡겨 진행한 소방점검에선 지적 사항 24건이 나왔다. 지하 1층 주차장 화재 감지기 전선이 끊어졌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현대백화점그룹 측은 “지적 사항을 모두 개선하고 그 결과를 유성소방서에 전달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을 계기로 지하 공간 화물 적재에 대한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의류와 박스 등 특수가연물의 경우 야적에 대한 규정이 없다시피 할 만큼 약하다”며 “규정을 강화해 좀 더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화재 사실 알리다 대피 못 해”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유족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희생자 채모 씨(33)의 아버지는 이날 오후 3시 40분경 유성선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서 아들의 신원을 확인한 뒤 “너 왜 거기 있니, 어서 나와라”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오열했다.
대피를 돕다가 정작 본인은 못 빠져나오기도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방재실에서 근무하던 박모 씨(41)는 화재를 인지한 후 화재 사실을 건물 관계자에게 알렸고 건물 내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화재 방송 송출 조치 등을 취하다가 대피 시기를 놓쳤다. 방재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박 씨는 병원 이송 중 심폐소생술을 통해 자가 호흡이 돌아왔지만 아직 의식은 없는 상태다.
이날 오후 4시경 화재 현장을 찾은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이번 사고에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어떤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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