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2역’ 전화사기극으로 할머니 60여명 피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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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주부 A 씨(55)는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는 광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지인 B 씨(60‧여)에게 “법원에 근무하는 여동생을 통해 부동산을 싸게 경매 받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1000만 원을 투자받았다. B 씨는 이내 투자금 1000만 원과 수익금을 돌려받자 투자를 이어갔다.

A 씨에게 받은 수익금으로 B 씨는 명품 옷 등을 사며 동네에 자랑했다. B 씨의 자랑을 들은 이웃들은 사기 아니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러자 B 씨는 이웃들에게 “실제 A 씨의 동생이 법원에 근무하고 있다”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이웃들이 알려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을 때 다른 여자가 “법원에 근무하는 여동생이다. 부동산 경매에 많이 투자해줘 고맙다”고 답변했다. 대부분 이웃은 “A 씨 여동생이 법원에 근무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믿었지만 일부는 “A 씨와 목소리가 같은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했다.이에 A 씨는 “자매이라서 목소리가 비슷하다”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A 씨의 답변은 철저한 거짓말이었다. A 씨는 실제 여동생이 있지만 법원에 근무하지 않았다. 그는 사기극을 위해 휴대전화 1개로 두 개 전화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투 넘버 서비스를 통신사에 신청했다. 그는 여동생인 척 전화를 받을 때 사투리를 쓰지 않고 조용한 목소리에 고상한 말투를 쓰며 주변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수시로 1인 2역 전화 사기극을 벌여 이웃들을 끌어 모았다.

A 씨는 B 씨 등 2명을 투자금액에 10%를 주겠다며 모집책으로 활용했다. A 씨의 1인 2역 전화사기극에 4년 동안 60~70대 할머니 60여명이 속았다. 할머니들은 광주 시내 2곳에 집중돼 있어 동네에서 난리가 났다.

할머니들은 총 100억 원대 사기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은 남편 퇴직금을 날리거나 자녀들에게 빌린 돈을 사기 당해 피눈물이 난다고 호소했다. 사기로 수차례 처벌받았던 A 씨는 끌어 모은 돈을 생활비를 썼고 B 씨 등은 고급 외제승용차나 건물을 구입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A 씨를 1500억 원 규모의 유사수신행위 등을 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모집책으로 활동한 B 씨 등 2명을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전체 피해조사가 끝나면 유사수신규모가 2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대부분이 노인들인데다 상당수가 가족들 돈까지 끌어 모아 사기를 당한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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