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군(14)은 지난해 10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같은 학년 학생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됐다. A 군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남는 4호 ‘사회봉사’ 처분이 결정됐다. 진학 때 불이익을 우려한 A 군의 부모는 학교폭력(학폭) 전문 변호사를 찾아갔다.
‘학폭위 처분을 낮추도록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은 변호사는 “지방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자”고 제안했다. A 군 부모는 소송을 제기했고 피해자 B 군은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피해를 증언해야 했다. 또 피해 사실 증명 서류를 마련하며 피해 당시 기억을 반복해 떠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 학생부 기록 안 남기려 소송
올 들어 초중고교의 대면 수업이 재개되면서 학교 폭력 발생 건수도 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학폭위 심의 건수는 9796건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많았던 2020년 전체 건수(8357건)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도 많다.
학폭위 결과에 소송을 내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학폭 전문 변호사’도 증가세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전문 분야를 ‘학교폭력’으로 등록한 변호사는 2019년에 4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5명에 달한다.
일부 법무법인은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가해 학생에게 유리한 자료를 확보하는 등의 노력으로 (학폭위 처분) 취소 처분을 받았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변호해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해드리겠다” 등의 홍보 문구를 내걸고 있다.
소송의 상당수는 가해 학생 측이 학폭위 처분 수위를 낮추고자 낸 것이다. 학폭위는 가해 학생에 대해 1호(서면 사과)∼9호(퇴학) 처분을 내릴 수 있다. 1∼3호와 7호 처분은 졸업과 동시에 학생부에서 삭제되지만 4∼6호와 8호는 졸업 후 2년이 지나야 지워진다. 한 학폭 전문 변호사는 “학폭위 처분 기록은 고교 및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록이 남지 않는 수준으로 처분을 낮추기 위해 찾아오는 학부모가 많다”고 했다.
○ “부모 경제력 따라 학폭위 처분 달라져”
학폭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지면 피해 학생의 고통이 연장될 수 있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중학생 C 군은 지난해 5월 같은 학교 여학생 치마 속을 촬영하다 적발돼 전학(8호)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C 군의 부모는 불복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지방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피해 학생은 재판 진행 기간 피해 당시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피해 학생은 사안이 빨리 종결되지 않는 것부터가 스트레스다. 추가 진술을 하거나 증인으로 나서야 하는 경우 상당한 심적 부담을 갖게 된다”고 했다.
보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처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 자문, 소송 대리 등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학폭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려면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든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최근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학폭위에서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의견서 제출 및 행정소송 대리 등 학폭 전문 변호사의 도움과 수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잦은 소송은 교육 현장에도 부담이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가해 학생 훈육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 교사가 아동학대로 역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다”며 “학교 폭력 사안을 처리하다 소송을 당한 뒤 스트레스를 받고 3개월간 병가를 낸 교사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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