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크레센도 빌딩 앞 교차로. 한 보행자가 인도에서 횡단보도 방향으로 뛰어왔는데, 같은 방향으로 달려오던 승용차 한 대가 정지하지 않고 그대로 우회전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진입한 후 운전자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끼익’ 소리가 났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한 순간이었다.
경찰이 교차로 우회전 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규정과 관련해 3개월 간의 계도기간을 마치고 이날부터 본격 단속을 시작했다. 보행자 보호 의무를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 27조 1항에 따라 차량 운전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있을 때 뿐 아니라,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을 때도 일시 정지해야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범칙금 6만 원(승용차 기준)과 벌점 10점이 부과된다.
●운전자 4명 중 1명은 안 지켜
그런데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날 오후 서울 도심 교차로 4곳을 30분씩 살펴본 결과 우회전 시 일시정지 의무가 있는 차량 239대 가운데 59대(24.7%)가 정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우회전했다. 차량 4대 중 1대 꼴로 법규를 위반한 것이다.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사거리에선 이날 오후 3시~3시 반 차량 91대가 우회전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를 맞닥뜨렸다. 하지만 35대(38.5%)가 일시정지하지 않고 통과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다가오는 여성 보행자 코앞을 승합차량이 위태롭게 지나치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 천호사거리에선 일시 정지해야 했던 차량 30대 중 3대(10%)가 정차 없이 횡단보도를 지나쳤다. 이 사거리는 최근 3년간 우회전 교통사고가 6건이나 발생했던 곳이다. 새문안로 교차로에선 87대 중 13(14.9%)대, 강남구 서울세관사거리에선 31대 중 8대(25.8%)가 우회전 시 일시정지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위반 차량 중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인데도 정지하지 않고 우회전해 횡단보도를 통과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도산공원 사거리에선 보행 신호가 파란 불인 상황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사이를 승용차가 빠르게 지나치는 아찔한 상황도 목격됐다. 경찰 관계자는 “보행 신호가 빨간 불이더라도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으면 운전자는 일단 멈춰야 한다”고 했다.
●“계도기간 우회전 교통사고 감소”
이날 단속에 나선 경찰은 오후 3시까지 전국에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 위반 사례 75건을 적발해 범칙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구체적 사고 위험이 명백한 상황에서 정지하지 않은 차량을 중심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발을 디디려 하거나, 손을 들어 횡단 의사를 표시하는 등 건너려는 의사가 명백한 상황 위주로 단속을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청은 계도기간 3개월(7월 12일~10월 11일) 동안 우회전 교통사고가 전국에서 총 3386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4478건)보다 24.4%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우회전 시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도 40명에서 22명으로 약 절반이 됐다.
제도 안착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날 오후 1시 35분경 서울 종로구 이화사거리에서 경찰에 단속된 운전자는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랬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분간 단속과 계도를 병행하며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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