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전 재산 기부해 ‘노벨상’ 만든 노벨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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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 지난 2주간 세계는 떠들썩했습니다.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해마다 상을 주라”고 했던 알프레드 노벨(1833∼1896·사진)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노벨상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2000년에 고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났습니다. 8세에 러시아로 이주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1950년부터 4년 동안 미국에 유학해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했습니다.

성인이 된 노벨은 스웨덴에서 폭약을 만들던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성능이 더 뛰어난 폭약 제조에 힘씁니다. 그는 니트로글리세린과 중국의 흑색 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해 이를 공업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액체인 니트로글리세린은 안정성 문제가 있었습니다. 툭하면 폭발했습니다. 노벨의 공장에도 폭발이 일어나 동생과 조수 4명이 한꺼번에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비극을 겪으면서도 노벨은 연구를 계속해 니트로글리세린이 규조토라는 흙에 스며들면 터지지 않고 굳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1867년 마침내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 목탄, 면화약에 스며들게 해 안전성을 확보한 단단한 폭약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바로 다이너마이트입니다.

당시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는 산업화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철도 및 광산 개발을 위한 다이너마이트 수요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노벨은 영국과 미국에 특허를 신청해 엄청난 부를 얻었습니다. 유럽 각지에 노벨의 공장이 세워졌고, 1886년에는 국제적 기업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수많은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주려던 노벨의 의도는 빗나갔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산업 현장만이 아닌 전쟁터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의 발명품은 효율적인 인명 살상 무기이기도 했습니다.

1888년 어느 날, 노벨의 형이 죽은 것을 노벨이 죽은 걸로 오인한 프랑스의 한 신문사가 ‘지옥의 상인이 죽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냅니다. 명백한 오보였지만 노벨은 이때 자신이 죽고 난 후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었던 노벨은 1895년 전 재산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작성했습니다.

노벨이 63세로 죽고 4년 뒤인 1900년, 그의 유산을 기반으로 노벨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01년부터 매년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해 메달과 상금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1968년엔 노벨 경제학상이 추가되었습니다.

노벨은 자신의 위대한 발명품이 가져온 악한 결과에 대해 최대한 책임을 지려고 했습니다. 노벨상은 그렇게 태어난 결과물입니다.

#알프레드 노벨#노벨#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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