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3시쯤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약 6.8㎞ 해상에서 근해연승어선 A호(29톤·서귀포선적)가 전복돼 해경이 수색하고 있다. 서귀포해양경찰서 제공
제주 해상에서 전복 사고로 실종된 선원 4명은 갈치 조업구역을 확보하기 위해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바다를 떠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8일 서귀포어선주협의회와 서귀포해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선원 4명을 태운 근해연승어선 A호(29톤·서귀포 선적)는 지난 16일 오후5시59분쯤 모슬포항을 출항해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갈치는 인기 어종으로 조업 경쟁이 치열한 탓에 조업구역을 선점하는 게 최우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갈치배가 조업구역에 들어선 후 24시간이 지나야 해당 자리를 확보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 관례에 따르면 16일 저녁 사고 해역에 도착한 A호가 조업구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루가 지나는 17일 저녁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던 셈이다.
실제로 A호는 자리를 선점한 후 갈치 조업을 함께 할 나머지 4명의 선원을 이날 아침에 태우러 가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18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인근 해상에 근해연승어선 A호(29톤·서귀포 선적)가 전복돼 있다. 서귀포해양경찰서 제공특히 선장과 기관장의 경우 지난 15일 오전 서귀포항을 떠나 24시간을 채워 첫번째 자리를 확보한 뒤 다음날 모슬포항에서 외국인 선원 2명을 태우고 나섰다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17일 오전 10시를 기해 사고 해역인 제주도 서부 앞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됐다는 점이다. 당시 기상청은 18일까지 바람이 초속 9~20m로 매우 강하게 불고, 파도도 최고 4.0m로 매우 높게 일 것으로 내다봤다.
사고 해역의 풍랑주의보는 이날 저녁에야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상 악화에도 조업 구역 확보를 위해 자리를 떠날 수 없던 A호가 거센 파도 등에 전복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해경은 A호가 17일 오전 10시43분쯤 마지막으로 어업정보통신국에 위치 통지를 하고, 17일 오후 4시쯤 마지막으로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에 위치가 확인된 것을 확인했다.
천남선 서귀포어선주협회장은 “오늘 아침부터 기상이 좋아진다고 하니 자리도 확보했겠다, 선원들을 태우러 간다고 해놓고 연락이 두절됐다”며 “바다에 있는 다른 배들은 연락이 안 되니 다른 선원들을 실으러 갔나보다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진우 제주해양경찰청 경비구조과장 역시 이날 브리핑에서 “자리를 선점하게 되면 다른 어선들이 인정해주는 관례가 있어 미리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앵커를 투묘하고 대기하던 중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갈치는 제주에서 수백㎞ 떨어진 먼 바다에서 조업하지만 올해는 수온 변화 등으로 제주와 가까운 해역에서 갈치 조업에 나서는 어선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에서 체험 낚싯배를 운영하는 한 어민은 “올해는 하루에도 수온이 3~5도까지 벌어지다보니 먹이 형성 문제로 제주 연안에서 조업하는 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2시40분쯤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약 6.8㎞ 해상에서 A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인근 어선과 선주의 신고가 해경에 잇따라 접수됐다.
신고 접수 두 시간 뒤인 이날 오전 5시쯤 해경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을 당시 A호는 이미 선체 바닥을 보이며 전복된 상태였다.
현재까지 수차례 수중수색과 함께 해군·소방·민간이 함께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선장 임모씨(52), 기관장 권모씨(52), 베트남인 선원 B씨(30), 인도네시아인 선원 C씨(26)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현재 해경은 수색 반경을 기존 18㎞에서 36㎞로 2배 가량 늘리고 함정 9척, 항공기 7대, 민간 어선 15척을 동원하는 등 실종자 수색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경은 또 서귀포시 등과 협력해 실종자들의 가족들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선장 임씨와 기관장 권씨의 가족들은 서귀포시 서귀동 서귀포어선주협의회 사무실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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