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풀이 아닌 소통능력 키우는 영어평가를 [기고/황종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9일 03시 00분


황종배 한국영어교육학회 회장
황종배 한국영어교육학회 회장
최근 TV를 시청하다 눈길을 끈 장면을 봤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가는 교통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한국인들이 유창한 영어로 길을 안내하는 모습이었다. ‘영어 울렁증’ 때문에 외국인들이 말을 걸면 도망치듯 피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지금의 젊은 MZ세대들이 과거의 영어 울렁증 세대보다 확실히 영어를 더 잘한다는 건 사실일까. 한편에선 학생들의 전반적인 영어 학력 저하를 우려하기도 한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고등학교의 영어 수업 시수가 감소한 것을 걱정하고, 일부 대학교수들은 해가 갈수록 신입생들의 영어 전공 서적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한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과거보다 떨어진다는 주장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어교수법을 전공하고 30여 년 동안 제2 언어를 습득해 온 필자의 견해로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확실히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본다. 국가 간 영어 능력 비교가 가능한 국제적인 영어 평가시험인 토익 점수 또한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지난해 한국 토익 평균 점수는 679점으로 중국, 일본보다 높았으며 지난 20년 동안 한국 응시자들의 평균 점수가 100점 이상 올랐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노출 정도와 영어 사용 경험은 20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영어 노출도 일상이 되었다. 이처럼 외국어는 자주 노출되고 자연스럽게 쓰면서 느는 것이지, 암기 과목처럼 공부한다고 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현주소는 어떨까. 초중고교 영어 교과서와 영어 수업의 수준은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지만, 학교에서 영어 수업은 아직도 대학 입시를 위한 문제풀이식의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10년, 대학교 4년간 영어를 배우지만 막상 영어로는 말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 한국의 영어 교육’이라는 자조 섞인 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영어 평가 방식이 아직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영어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바꿔야 끈질기게 남아 있는 문제풀이식 영어 ‘공부’가 사라질 것이다. 아직도 문법과 읽기에 치중돼 있는 영어 커리큘럼도 바꿔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들도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하기’를 영어 능력 중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꼽는 만큼, 우리 학교 영어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말하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즉 듣기, 읽기와 함께 진정으로 말할 줄 아는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는 좋은 영어 시험, 그것을 영어 교육 교실과 대학 입학시험에서 보고 싶다.

#소통능력#영어평가#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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