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잇따른 포 사격으로 서해 북단 섬 연평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이 유사시 대피할 대피호에 ‘비상식량’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옹진군은 최근 연평도를 포함해 백령도 등 서해 5도 지역 주민들이 한 끼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양의 대피호 비상식량 구입 예산을 확보했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옹진군 특성상 추가 구입을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21일 오전 찾은 인천 옹진군 연평도 1호 대피호의 식품창고에선 비상식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형 선풍기와 겹겹이 쌓인 의자들이 창고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품창고에도 비상식량이 있던 자리에 식판 등이 담긴 박스 여러 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상 시 466명을 수용할 수 있는 1호 대피호는 인구 약 2100명의 연평도 내 대피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대피호의 필요성이 커지며 2012년 새 시설로 만들어졌다. 냉난방 시설에다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공기 여과장치까지 갖춘 최신식 대피시설이지만, 현재 비상식량만 없다. 연평면사무소 관계자는 “2020년부터 국내 안보 상황이 안정적이라고 판단된다는 지침에 따라 비상식량을 두지 않고 있다”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량까지 모두 폐기하다보니 현재는 비상식량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대피호는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이 유사시 주민들이 대피해 장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연평도에는 8곳, 서해 최북단 섬인 백령도에는 29곳, 대·소청도에는 9곳이 있다. 연평도에서는 이달 14일 북한이 서해상으로 포 사격을 가하자 대피호 8곳이 개방되기도 했다. 실제 주민 대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대피호에 비상식량이 없는 건 연평도뿐 아니라 백령도, 대·소청도도 마찬가지다. 2020년부터 당시 안정적이던 남북 안보 상황을 고려해 비상식량을 새로 두지 않았다는 게 옹진군의 설명이다. 옹진군이 기존 사용하던 비상식량의 유통기한은 3년이었다.
올해 들어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옹진군은 다시 비상식량 구입 예산 확보에 나섰다. 최근 인천시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서해 5도 주민 한 끼 분량을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했다.
하지만 대피호가 주민들이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는 시설인 만큼 충분한 식량 비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연평도 주민 A 씨(61)는 “만약 당장 오늘이라도 비상 상황이 발생해 대피호를 가게 된다면 식량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걱정”이라며 “장기간 비상 상황이 없다면 식량을 폐기해야 하는 건 측면도 있지만, 대피호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목적인 만큼 충분한 식량 구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옹진군 관계자는 “군 자체 예산을 투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시를 통해 정부에 예산 지원을 건의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군사적 긴장 없이 서해 5도 지역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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