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파업 등에 대해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불법성을 인정하더라도 배상 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거나 배상액을 경감해주고 있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21일 나왔다. ‘노란봉투법’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기존 법체계로도 노조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가 어느 정도 제한된다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2009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기업·국가·제3자가 노조와 소속 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 소송 총 151건 가운데 판결이 선고된 63건을 조사한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63건 중 인용된 건 39건(61.9%)이었다. 나머지 24건(38.1%)은 ‘파업과 손해 발생의 인과성이 약하다’ 등의 이유로 기각됐다. 손배 책임이 인정된 39건도 배상액이 그대로 인정된 사례는 많지 않았다. 39건 중 26건(66.7%)은 배상액을 20∼90% 감경받았다.
판결이 선고된 63건 중 31건(49.2%)은 노조의 사업장(시설) 점거가 원인이었다. 사업장 점거의 대부분은 조합원들이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려는 하청 근로자들을 방해하는 등 위력을 쓰거나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행·상해가 동반됐다. 이런 경우 손배 인용률은 90.3%(28건)였다. 반면 집회·시위·농성으로 인한 손배 청구 인용률은 42.9%, 파업으로 일을 거부한 경우는 36.4%였다.
이번 조사는 국회가 ‘노란봉투법’ 입법 논의를 위해 정부에 요청해 이뤄졌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손배 책임을 면제받는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배상액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 파업에 따른 손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를 막겠다는 취지다.
고용부는 앞선 4일 노조를 상대로 한 총 손배 소송 건수(151건), 이 중 94%(142건)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노조를 상대로 제기된 점 등을 담은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후속으로 21일 해당 소송들의 내용을 분석한 2차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날 고용부 발표를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손배 청구가 남용되고 있다는 노동계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노란봉투법은 민노총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이 없다는 게 명백해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지현 대변인은 “(고용부 조사 결과는) 불법 파업이 인정된 경우 과도한 배상액이 청구돼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법 개정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반박했다.
향후 입법 과정에서도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을 핵심 입법 과제로 추진하며 “기업의 살인적 손배 소송 남용을 막고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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