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근로자가 15일 작업 도중 소스 혼합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기 평택의 SPL 제빵공장. 이 곳은 사고 약 한 달 전인 9월에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감독을 받았다.
당시 감독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이었던 끼임사고 방호 조치에 대한 지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감독 제도가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산업안전보건감독 제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안전감독 이틀만에 사망사고…‘눈가리고 아웅’ 안전감독
23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SPL 제빵공장뿐 아니라 상당수 사업장에서 고용부의 산업안전보건감독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SK지오센트릭 울산공장은 8월 31일 폭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1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해당 공장은 사고 바로 이틀 전인 8월 29일 고용부의 산업안전보건감독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독 당시 ‘경고표시 미조치’와 ‘개구부 추락방지 미조치’로 시정조치 및 과태료 처분을 받았는데 불과 이틀 후 사상자 7명의 중대재해가 벌어진 것이다. 해당 공장은 산업안전감독 넉 달 전인 4월에도 저장탱크 청소 작업 중 불이 나 근로자 2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던 사업장이다.
경남 창원 현대비앤지스틸에서도 역시 산업안전감독을 받은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9월과 10월 근로자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5월 산업안전감독 당시 ‘안전보건교육 미실시’와 ‘안전난간 설치기준 미준수’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감독이 무색하게 넉달 만에 2건의 중대재해에서 근로자 총 2명이 사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9월 8일 차량에 철강 자재를 싣던 근로자 1명이 차량과 자재 사이에 끼어 숨진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역시 사고 석 달 전인 6월 산업안전감독에서 공정안전보고서 미준수 및 미보완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 사고 위주 ‘반짝’ 감독-산업안전감독관 역량 한계
전문가들은 사고 위주로 이뤄지는 집중 감독과 산업안전감독관의 역량 부족을 현행 산업안전보건감독의 한계로 지적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 교수는 “현재 감독 정책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집중 감독이나 불시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인데 둘다 옳은 방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재해 발생 후 엄벌식 감독을 가면 오히려 사업장들이 재해를 숨기려고 할 수 있다. 또 현실적으로 작업장 규모가 아주 작은 곳이 아닌 이상, 불시 감독을 나가도 사업장에서 시간을 끌면서 미리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신 강 교수는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의 ‘페이스 리포트(FACE Report)’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단순히 책임자 처벌 목적이 아닌, 감독 후 지적 사항이나 작은 사고에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났는지 ‘맥락’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사업장 전체에 공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감독관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산업안전감독관의 숫자는 늘리고 있지만 기술 자격이 없는 일반 행정직군이 다수”라며 “해외 감독관은 기술자격이 확실한 이들이 산업안전감독에서 행정사법조치와 기술 지도를 병행하는데, 우리 감독관들은 기계 설비 작동 원리와 위험요인을 볼 수 있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편 고용부는 24일부터 12월 2일까지 6주간 식품 혼합기 등 최근 SPL제빵공장 사고 기계와 유사한 위험 기계장비의 안전조치 이행 여부 집중단속에 나서기로 했다. 1차 단속(10월 24일~11월 13일)에서는 집중 자율점검과 개선·계도 중심, 2차 단속(11월 14일~12월 2일)에서는 기계에 대한 사용중지 명령 등이 포함된 불시 점검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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