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 자산… 중증환자, 의료비 133% 급증-소득 36% 감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4일 03시 00분


[2022 서울 헬스쇼]〈1〉건강에 투자, 최고의 재테크
2020년 출생자 기대수명 83.5세, 건강수명 66.3세… 17년 질병 시달려
만성질환 3개면 의료비 2배 늘어… 건강하면 일-건강 유지 선순환
금연-절주 생활습관 평균수명 늘려… 건강검진으로 질병 초기 포착 중요

A 씨(55)의 인생은 거칠 것이 없었다.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학창 시절 1등을 도맡았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20년 넘게 승진만 보고 달리다 ‘번아웃(burn out·신체적 정신적 탈진)’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 정도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2015년 회사를 그만뒀다. 불안한 미래를 잊으려 술 담배에 기대다 보니 지난해 하인두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이후 생긴 빚 4000만 원은 또 다른 스트레스다.

누구도 이런 어려움에 처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태어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 이 중 질병이나 부상이 생기는 기간을 뺀 ‘건강수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우리 삶은 길어졌지만, 평균 17년 동안 ‘유병장수(有病長壽)’하게 된다는 의미다.
○ 만성질환 3개 앓으면 의료비 2배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2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 번이라도 병원에 간 적 있는 국민 1명당 평균 진료비는 214만 원으로, 2016년(147만 원)에 비해 46% 급증했다. 1인당 연평균 진료비가 200만 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김대환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암이나 심장, 뇌혈관 질환 등 중증 질환에 걸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의료비를 133% 더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은 평균 36% 감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2021년 보고서를 보면 만성질환이 없는 성인은 건강보험 부담금을 제외한 본인부담 의료비로 한 해 약 46만 원을 지출했다. 반면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이 3개 이상인 사람은 약 100만 원을 지출했다. 박은자 보사연 연구위원은 “간병비,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 등 부가비용까지 감안하면 만성질환자의 실제 지출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만성질환을 장기간 앓다 보면 더 큰 병이 생겨 한 가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즉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할 수 있다. 가구당 연소득의 15%를 넘어서는 의료비를 뜻한다. 2020년 건강보험연구원 분석 결과 가구에 만성질환자가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능성이 3배 높아졌다.
○ 아프면 소득까지 줄어 ‘이중고’
경기도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던 B 씨(66)는 만성 신부전증으로 생계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하루 4차례씩 복막 투석을 하느라 2012년 교편을 내려놨다. 월 20만 원 안팎의 투석 비용도 부담스러워진 와중에 신장암, 심장 질환까지 연이어 생겼다. 모아둔 돈을 모두 병원비로 써버린 그에게 현재 남은 건 보증금 10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뿐이다. 이 씨는 “건강을 잃으면 소득과 사회적 지위까지 함께 사라진다”고 한탄했다.

병에 걸리면 의료비 부담은 늘고 소득은 끊기는 ‘이중고’에 시달리기 쉽다. 특히 고령자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보사연의 노인실태조사(2020년)를 보면 65세 이상 인구 중 일을 하는 사람은 평균 1.6개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었다. 반면 미취업 상태인 사람은 2.1개의 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하면 일과 건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서울 서대문구 노인대학 학장으로 일하는 고미자 씨(68·여)는 주 4회 지역 노인들에게 댄스, 에어로빅 등을 가르친다. 고 씨는 “골밀도 검사를 하니 ‘20대 수준’으로 나왔다”며 “즐겁게 어르신들과 소통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분석 결과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은 1인당 월평균 7만 원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봤다. 이윤경 보사연 저출산고령화정책기획센터장은 “노인에게 일자리는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활동의 역할도 한다”며 “몸이 아파 일을 못 하면 사회활동이 단절돼 건강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7개 수칙’ 지키면 11년 더 산다
전문가들은 ‘건강이 곧 재테크’라고 강조한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개인과 가계 경제의 근간이 되고, 나아가 국가의 부와 미래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

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 전략은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그 비결로 ‘알라메다 7’을 소개했다. 미국 공중보건 분야를 정립한 의사 레스터 브레슬로가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알라메다) 지역 주민 6928명의 생활습관을 20년간 조사해 도출한 비결이다.

해당 지역명을 따 만든 ‘알라메다 7’은 △금연 △절주 △하루 7, 8시간 수면 △규칙적인 운동 △적정 체중 유지 △아침 먹기 △간식 안 먹기의 7개 수칙. 이 중 6개 이상을 지킨 사람은 3개 이하만 지킨 사람보다 평균 11년을 더 살았다.

주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을 초기에 포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굳이 고가의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2년에 한 번 국가건강검진을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건강#기대수명#건강수명#알라메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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