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정근, ‘난 민주 유력의원 측근…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친하다’며 돈 요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7일 1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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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드러난 정치권 친분 과시

“나는 유력 정치인 A 국회의원(당시)의 측근이고 B 대통령비서실장과도 친하다. A 의원이 곧 당의 주도적 위치로 갈 것이니 내년에 있을 21대 총선에서 서초구 공천은 따놓은 것과 다름없다.”

검찰이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60․수감 중)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하며 이 전 부총장의 이 같은 발언을 공소장에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계속된 낙선으로 인해 정치자금이 부족했던 이 전 부총장이 사업가 박모 씨(62)로부터 각종 청탁을 받고 총 10억 원의 불법 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 19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청탁을 빌미로 사업가로부터 10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23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청탁을 빌미로 사업가로부터 10억 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지난달 23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비서실장과 찍은 사진 보내고 “실장님이 도와주신다”
27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A4용지 29장 분량의 공소장에는 이 전 부총장이 민주당의 유력 인사 및 공공기관 관계자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박 씨에게 돈을 요구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은 2020년 4월경 포스코건설이 가지고 있던 구룡마을 개발 관련 우선수익권 인수를 도와달라는 박 씨의 청탁을 받고 “(B 대통령비서)실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했다. C 국토부 장관과도 친하니 선거가 끝난 후 인수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서 이 전 부총장은 박 씨에게 조카의 전세자금 2억2000만 원을 요구했고, 같은 해 7월경 자신의 언니 계좌로 도합 2억 원을 전달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조카의 전세자금을 요구하는 도중 박 씨에게 B 전 실장과 청와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전송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이 포스코건설 소유 우선수익권 인수와 관련해 B 전 실장에 대한 청탁을 등을 대가로 받은 돈을 3억1500만 원으로 집계했다.

B 전 실장은 동아일보에 “이 전 부총장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내 뒤엔 A 의원 있다” 불법 선거자금 3억3000만 원 수수
이 전 부총장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서초갑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에도 요구는 계속됐다. 이 전 부총장은 선거 경선일이 다가오자 박 씨에게 “공천을 받으려면 어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급하다”거나 “선거 자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 초선으로 출마한 후보들 중 친한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도와주면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 총 6000만 원을 전달받았다.

이 전 부총장은 공천이 확정된 뒤인 2020년 3월경에도 “내 뒤에 A 의원 같은 분들이 있다. 나를 도와주면 사업적으로 많이 도와줄 테니 스폰(스폰서)을 해달라”며 박 씨로부터 5000만 원을 입금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선거 준비기간인 같은 해 3월 25일부터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4월 14일까지 산업통상자원부의 정부 지원금 배정 및 용인 물류단지 개발과 관련된 문제 해결 등 청탁을 대가로 총 2억2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산업부 지원금 배정 청탁을 받은 이 전 부총장은 당시 산업부 D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청탁 성사를 자신했다. 실제로 이 전 부총장의 주선에 의해 청탁을 부탁한 액화수소업체 관계자와 당시 산업부 기획조정실장이 만나 재정지원 등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D 전 장관은 이 전 부총장의 청탁 사실을 묻는 질문에 “이 전 부총장과 알고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으며 통화를 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중기부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 ‘언니’라 부를 정도로 친해”
2019년 말 한 중소기업창업투자사(창투사) 인수에 어려움을 겪던 박 씨는 지인을 통해 이 전 부총장을 처음 소개받았다. 박 씨로부터 창투사 인수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 전 부총장은 “E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움직여야 한다. E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관계이니 인사 목적으로 2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부총장은 A 전 의원과 B 전 실장과의 친분도 과시했다.

박 씨는 같은 해 12월 10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 전 부총장에게 창투사 인수 청탁 목적의 현금 20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 부총장은 또 “제가 밥도 사야 하는데 제 돈을 쓸 수는 없지 않느냐”며 박 씨에게 1000만 원을 추가로 받아갔다고 한다. 실제로 박 씨는 창투사 인수에 성공했고, 이 전 부총장에게 감사 인사 등 목적으로 1000만 원을 더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E 전 장관 측은 “청탁을 받은 적도, 장관 재직 중 만나거나 전화가 온 적도 없다”며 “밥 사달라는 문자가 왔는데 만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현역 의원, 전 식약처장은 실제로 면담 주선
이 밖에도 이 전 부총장은 박 씨와 친분이 있는 발전공기업 관계자들의 인사 청탁 및 박 씨 회사의 발전공기업 납품 알선 등을 대가로 현금 6100만 원과 명품가방 등 1591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 또 마스크 업체 B 사의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 원을 받는 등 모두 합쳐 7억 원가량의 불법 자금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부총장은 산업부 산하 발전공기업 관련 청탁에 대해서는 당시 산자위 위원이던 민주당 F 의원과의 친분을, 마스크 인허가 청탁과 관련해 G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의 친분을 내세웠다.
이 전 부총장의 부탁을 받은 F 의원은 당시 한 발전공기업 사장에게 전화해 “관계자가 찾아갈 테니 편의를 봐주라”는 취지로 말했으며 실제로 면담 또한 성사된 것으로 조사됐다. G 전 처장은 이 씨에게 담당 공무원의 연락처를 전달했고 해당 공무원은 박 씨의 부인과 만나 마스크 인허가 관련 민원을 청취했다.

F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부총장과 알고 지낸 것은 맞지만 청탁을 받은 기억이 없다. 청탁이 없었으니 이를 들어준 사실도 없다”고 부인했다. G 전 처장은 연락처를 전달한 것일 뿐 이권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씨가 부정한 청탁을 받고 알선해준 대가로 총 9억4000만 원을, 자신이 출마한 21대 국회의원 선거 비용 명목으로 총 3억3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중 2억7000만 원의 경우 알선수재 및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모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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