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전때 90~150℃보다 2배 높아져 비닐 녹아내리고 윤활제 성분 연기
노후차는 종이발화 400℃ 넘을수도
최근 5년 車배기장치 화재 907건 “시동 꺼야하지만 바빠서 그냥 작업”
지난달 26일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전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물차 머플러(배기구)가 가열되면서 화재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지하 1층 하역장 주변에 있던 1t 화물차가 10분 이상 시동을 켠 채 작업하다 불이 났을 것이란 추정이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가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팀과 함께 당시 상황을 재연해 실험한 결과 배기구 옆에 비닐·종이 등 가연성 물질이 있을 경우 발화가 쉽게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배기구 옆에 가연성 물질 있으면 순식간에 발화”
이 교수팀은 25일 대전 유성구의 한 차량 정비소에서 화재 당시 하역장과 유사한 환경을 만든 후 어떤 조건에서 트럭 배기구 인근에서 불이 시작될 수 있는지 실험했다. 차량은 사고 당시 차량과 동일한 2017년식 포터2로 실험했으며, 시동을 켜고 정차한 상태(공회전)에서 비접촉식 적외선 온도계로 표면 온도를 측정했다.
시동을 켜고 공회전한 지 10분이 지나자 배기구 표면 온도는 90도에서 150도 사이를 오갔다. 측정 지점마다 온도가 다르게 집계됐지만, 표면의 80% 이상은 120도를 웃돌았다. 화재 당시 트럭 주변에 가연성 물질이 많았던 것을 감안해 비닐과 종이 박스를 배기구 표면에 가져가 댄 결과 비닐은 서서히 녹아내렸고, 박스에는 별다른 흔적이 남지 않았다.
경찰은 트럭 배기구 일부 또는 전부가 종이상자 등에 가려져 온도가 급상승했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실험팀은 방화 장갑으로 배기구의 절반 정도를 가린 후 재차 온도를 측정했다. 10분이 흐르자 표면 온도는 최대 240도까지 상승했다. 비닐은 배기구에 닿은 지 5초 만에 녹아내려 구멍이 났고, 엔진오일 같은 윤활제가 묻은 상자를 대자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 교수는 “일반적 환경에선 배기구 열기만으로 불이 쉽게 나지 않지만, 비닐·종이·오일류 등 가연성 물질이 놓인 하역장에선 충분히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장시간 주행했거나 차량 노후화, 배기관에 낀 먼지 등 다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배기구 온도가 400∼500도 가까이 올라갈 수도 있다”고 했다. 종이의 경우 자연발화 온도인 400도에 도달하면 저절로 불이 붙으며 연소를 시작한다.
○ 배기구 과열 화재, 연평균 180건
실제로 자동차 배기구 등 배기장치 과열에 따른 화재는 적잖게 발생한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이 같은 사고는 907건 발생했는데, 그 결과로 14명이 사망하거나 다쳤다.
2018년 11월 서울 광진구의 한 마트 주차장에선 화물차 배기구 과열로 근처에 쌓여 있던 종이상자에서 불이 발생해 건물 일부에 옮겨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경기 남양주시의 한 주차장에서도 배기구와 맞닿은 나뭇잎과 쓰레기에서 불이 시작돼 인근 차량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화물차의 경우 공회전 하는 경우가 많아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물차 운전자 A 씨는 “원래 시동을 끄고 작업해야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급해 그냥 시동을 켠 채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시민 상당수가 차량 배기장치 열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잘 모른다”며 “주정차 시 주변에 건초나 종이 등이 있는 곳은 피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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