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생 5명 중 1명은 수학에 흥미를 못 느끼고, 4명 중 1명은 문제 풀이를 지레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수학 교과서가 ‘초1 수포자(수학포기자)’를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제출받은 ‘초1 기초학습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초1 학생의 19.0%가 수학 관련 활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25.8%는 잘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끝까지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해당 조사는 지난해 4∼6월 전국의 초1 담임교사 54명이 학생 1081명의 수리력 및 흥미도를 점검한 결과다.
학교 현장에선 “수학 교과서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수학을 처음 접하는 초1 교과서가 연산을 선행 학습했거나 한글을 뗀 아이를 기준으로 집필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초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숫자를 두려워하거나 흥미를 잃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 차 초등교사는 “수 개념을 익히는 과정은 압축되어 있는 반면 참고서처럼 응용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한글 모르면 이해 못하는 초1 수학교과서… “사교육 없인 힘들어”
초1 19%는 ‘잠재적 수포자’
국어 쌍자음-겹받침 안배웠는데 수학은 1학기부터 지문으로 나와 숫자 개념 익힐 예시그림도 부족 교사 31% “초1 교과서 어렵다”… 부모들 “선행학습 시켰어야 했나”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수학 교과서를 보니 선행학습을 시켰어야 했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30대 학부모 최모 씨는 올 초에 초1인 큰아들 수학 숙제를 도와주다가 답을 몰라 무안했던 적이 있다. 부교재로 쓰는 ‘수학익힘’ 교과서에 수록된 그림을 보고 뺄셈식을 만드는 문제였다. 땅에 떨어진 종이 7장을 두 학생이 한 장씩 줍고 있는 그림을 보고 최 씨는 ‘7-2=5’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설지에는 ‘4-3=1, 7-4=3, 7-3=4’가 답의 예로 나와 있었다. 그제서야 파란색 종이가 4장, 빨간색 종이가 3장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의 개수 차이를 뺄셈식으로 만들어보는 문제였다. 최 씨는 “여러 뺄셈식을 만들어보라는 의도는 알겠지만 문제가 직관적이지 않아 어른들도 헷갈리는 수준”이라며 “연필만 만지작거리는 아들을 보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 국어 선행학습 안 하면 수학 못 풀어
초등 교사들은 현행 초1 수학 교과서가 수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게 어렵다고 지적한다. 본보가 20∼25일 강득구 의원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전국 초등 교사 39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1.3%가 “초1 교과서가 어렵다”고 답했다. ‘쉽다’는 14.9%, ‘적절하다’는 의견은 53.8%였다.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아이들의 문해력을 고려하지 않는 교과서 구성이다. 정부는 2017년부터 초1 한글 교육시간을 약 두 배로 늘리면서 ‘한글 책임교육’을 강조했다. 한글을 배우지 않고 입학해도 학교에서 가르쳐 준다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수학 교과서를 읽고 문제를 풀려면 한글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국어 교과서에선 쌍자음을 1학년 1학기 후반에, 겹받침은 1학년 2학기에 배운다. 하지만 수학 교과서는 1학기부터 이미 쌍자음, 겹받침이 있는 단어가 지문으로 나온다. 경력 25년 차 초등 교사 정모 씨는 “3월에 한글을 최대한 익히게 하고 4월부터 수학 교과 진도를 나가지만 그래도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다”고 전했다.
수 개념을 기초부터 설명하는 점도 부족하다. 현행 교과서는 숫자 하나를 설명할 때 예시 그림 한두 가지를 보여주는 정도다. 반면 일본의 초1 교과서는 숫자 하나를 과일, 동물 등 6가지 이미지를 통해 설명한다. 전북 전주시 전주북초의 정미진 교사는 “수학을 처음 접할 때는 다양한 방식으로 수 자극을 줘야 하는데 현행 교과서는 이미지가 부족하고 그마저도 구체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 사교육 의존이 오히려 기초 부실하게 해
부교재로 쓰는 수학익힘 교과서는 아이들에겐 ‘또 다른 벽’이다. 부교재는 본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제 것으로 흡수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부교재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센터장은 “본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수준의 수리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아이들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교과서가 어려우면 취학 전부터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많은 사교육이 계산법이나 문제풀이 위주로 가르치다 보니 오히려 기초가 부실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경기 성남시 당촌초 이환규 교사는 “반복해서 문제를 풀고 익숙한 답을 외우는 것에 훈련된 학생들은 분수 등 수 개념이 복잡해지는 초등 고학년 진도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박형주 2022 국가교육과정 개정추진위원장(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은 “지문에 일상 언어를 많이 넣으면 수학을 친숙하게 느낄 것으로 기대했는데,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역효과가 난 측면이 있다”며 “새 교육과정에서는 아이들의 한글 이해도 차이를 고려해 교육과정을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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