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²당 12명 넘게 밀집”… 5.5평에 300명 깔리고 선 채 실신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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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3.2m ‘죽음의 골목’, 청년들 앗아갔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154명 압사 132명 중경상
좁은 비탈길서 뒤엉켜 사고… 도로 막혀 구조 골든타임 놓쳐
인파 예상됐는데 안전대책 소홀… 국내 압사사고중 최악 피해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었던 29일 밤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서 154명이 깔려 숨지고 132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숨진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30일 소방당국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기준으로 이번 사고 사망자는 154명, 중상자 36명, 경상자 96명으로 모두 28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중상자가 적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고 장소는 해밀톤호텔 서편 폭 3.2m짜리 내리막 골목길이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와 유명 식당 및 클럽이 밀집된 세계음식문화거리를 잇는 지름길이라 이태원역 인근에서 유동인구가 많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참사는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저녁부터 인파가 몰리면서 시작됐다. 골목마다 행인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는데, 오후 10시 15분경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길에 서 있던 인파가 내리막 방향으로 넘어지면서 도미노처럼 서로 깔리는 참사가 났다.

처참한 사고현장 핼러윈을 이틀 앞둔 토요일이었던 29일 오후 10시 15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13만여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에서 총 154명이 사망하고 132명이 다치는 대형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 곳곳에
 사상자들이 쓰러져 있는 가운데 경찰과 구조대, 시민 등이 얽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SNS 캡처
처참한 사고현장 핼러윈을 이틀 앞둔 토요일이었던 29일 오후 10시 15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 13만여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해밀톤호텔 서편 좁은 골목에서 총 154명이 사망하고 132명이 다치는 대형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현장 곳곳에 사상자들이 쓰러져 있는 가운데 경찰과 구조대, 시민 등이 얽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SNS 캡처
신고 2분 만에 구조대원이 도착했지만 좁은 공간에 인파가 뒤엉켜 있어 구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도로 정체로 구급차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아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시민들도 앞다퉈 팔을 걷어붙이고 심폐소생술(CPR)에 나섰지만 이미 구조의 골든타임(4분)은 지난 뒤였다. 소방당국은 이날 대응 최고 수준인 3단계를 발령하고 소방대원 경찰 등 2421명을 구조 작업에 투입했지만 끝내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 압사 사고로는 최악의 인명 피해다. 사망자 154명 중 103명(66.9%)이 20대였다. △30대 30명 △10대 11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었고 1명은 연령대가 파악되지 않았다. 사망자 중 98명은 여성이었다. 미국(2명), 중국(4명), 일본(2명), 러시아(4명), 이란(5명) 등 14개국 외국인 26명이 숨졌다.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는 3년 만의 마스크 없는 핼러윈 축제라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이 컸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은 안전사고 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 없이 인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파티를 여는 방식이라 안전조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도 마땅치 않았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들을 확보해 분석하는 한편 목격자를 조사하고 있다.



생존자-목격자가 전한 악몽 현장
폭 3.2m 길이 40m 좁은 비탈길,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아수라장
압력에 약한 여성들 더 큰 피해 “살려주세요” 울부짖고 잇단 실신
사고 30분 지나서야 구조 시작


“(밀려 넘어졌을 때) 앞사람 등에 내 얼굴이 완전히 파묻혔고, 뒷사람이 내 몸 전체를 깔고 있었어요. 깔린 채로 인파에 떠밀려서 골목길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제 바로 아래 있던 사람이 못 움직이는 것 같아서 몸을 잡았는데, 이미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생존자 최승헌 군(17·충남 서산시)은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는 당시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 아래쪽에 있었다. 최 군은 “내리막에서 사람들이 뒤에서 미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넘어졌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있었던 최 군은 인파 무리에 깔린 지 30여 분 만에 가까스로 구조됐다. 최 군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유성주 군(17)은 “다행히 내리막길 위쪽에 있어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앞에 있던 사람이 선 채로 실신하는 걸 봤다”고 말했다.
○ “앞뒤로 밀려 숨 안 쉬어져”
목격자와 생존자들이 전한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일부 구조자는 “서 있었지만 앞뒤로 받는 압력에 숨을 쉬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현장에서 간신히 구조된 A 씨(29·여)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골목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확 밀렸다”며 “숨이 안 쉬어져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들고 최대한 숨을 쉬려고 했다. 친구에게 ‘우리 나갈 수 있어, 정신 차려’라고 얘기하다가 저도 점점 정신이 희미해졌다”고 했다.

특히 압력에 저항하는 힘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떨어지는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목격자 최모 씨(21)는 “여성들의 ‘살려주세요’라는 울부짖음과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이번 참사에서 여성 희생자 수가 남성의 약 2배에 달했다.
○ “밀어” “밀지 마” 고함과 절규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에 앞서 이미 해당 골목에서는 인파에 밀린 사람들의 신발이 벗겨지거나 가방이 찢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8시 반경 일행과 함께 이태원에 온 이모 씨(27)는 “이때도 사고가 난 골목에서 사람들이 물밀 듯 밀려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내려오려는 사람들과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며 3명이 연쇄적으로 넘어지기도 했다”고 했다.

인파가 갑자기 몰린 건 오후 10시경부터였다. 선택규 씨(27)는 “오후 10시쯤 인플루언서가 왔다는 말이 돌면서 인파가 더 많아졌다”고 기억했다. 사고 직전 참사 현장에선 ‘밀어’라는 고함과 ‘밀지 마’라는 절규가 오갔다고 한다. 이모 씨(25)는 “압사 사고 전에도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사람들 틈에 껴 있었다”고 했다. 최 군은 “오후 10시 10분쯤부터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고, 일어나려고 해도 다시 밀려 넘어지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골목 내 폭 3.2m, 길이 5.7m 남짓한 약 18.24m²(약 5.5평) 공간에 300여 명이 쌓였는데, 이 구간에서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고 현장 영상 등을 보면 참사 당시 인파가 1m²당 12명 이상이었을 것”이라며 “이 정도면 실신자가 생긴다”고 했다.
○ “구급대원 진입에 시간 걸려 골든타임(4분) 놓쳐”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파 속에서 의식을 잃고 숨을 쉬지 않는 이들이 점차 늘었지만 구조는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근 상인 B 씨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사람이 너무 많아 현장에 다가갈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오후 10시 반 전에 일부 경찰과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지만 구조는 지지부진했다. 사고 현장을 찍은 영상 등에는 경찰관과 구급대원들이 인파에 깔려 정신을 잃은 시민의 손을 잡고 끌어내려고 애쓰지만 못 꺼내는 상황이 담겨 있다.

구조가 본격화된 것은 사고 발생 뒤 최소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10시 45분경부터였다. 사고 장소 인근에 있었던 C 씨(23)는 “인파로 길목이 차단돼 구급대원들이 진입하기도 힘든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고 했다. 갈수록 심정지 골든타임(4분)을 넘긴 피해자가 늘었다.

오후 11:40 경 곳곳서 심폐소생 안간힘 29일 오후 11시 40분경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서 구조대원들과 시민들이 쓰러진 피해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손이 모자라자 구급대원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있느냐”고 소리쳤다. 시민들은 피해자들의 손발을 주무르기도 했다. 김보라 인턴기자 
고려대 한국사학과 졸업
오후 11:40 경 곳곳서 심폐소생 안간힘 29일 오후 11시 40분경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서 구조대원들과 시민들이 쓰러진 피해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다. 손이 모자라자 구급대원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있느냐”고 소리쳤다. 시민들은 피해자들의 손발을 주무르기도 했다. 김보라 인턴기자 고려대 한국사학과 졸업
구조대와 시민들은 위아래로 달라붙어 의식을 잃은 이들을 해밀톤호텔 앞 차도와 세계음식문화거리 등으로 옮겨 뉘었다. 구급대원과 시민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이미 사선을 넘은 희생자들이 푸른 천에 덮인 채 나란히 뉘어졌다.

30일 오전 3:00 경 희생자 시신 병원 이송 30일 오전 3시경 구조대원들이 줄을 서 사망자 시신을 옮기고 있다. 초기 구조가 늦어지면서 심정지 상태가 됐던 희생자 대부분이 
구조대원과 시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0일 오전 3:00 경 희생자 시신 병원 이송 30일 오전 3시경 구조대원들이 줄을 서 사망자 시신을 옮기고 있다. 초기 구조가 늦어지면서 심정지 상태가 됐던 희생자 대부분이 구조대원과 시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30일 0시 반이 지나서야 현장이 어느 정도 정리됐고, 시신들이 각 병원으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 벽면에는 사상자들이 살기 위해 붙잡았던 간판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극적으로 구조되거나 사고를 피한 이들은 정신적 충격을 호소했다. 29일 오후 11시 15분경에야 가까스로 구조됐다는 한 시민은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에게 “같이 온 친구는 다리를 다쳐 길바닥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지금도 당시 공포를 생각하면 손발이 덜덜 떨린다”고 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생존자#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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