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본 이태원 참사영상에 잠 못자”… 전 국민 트라우마 확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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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이크 없는 영상에 반복 노출… “사진 속 피해자들 표정 안 잊혀”
시민들 ‘목격에 의한 충격’ 호소… 다른 재난 닥칠 것처럼 두렵거나
목욕 등 일상 어려울땐 진료 필요… “잊어버려” 등 섣부른 조언 금물


“다친 곳은 없지만…. 충격이 너무 커요. 학교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고교 1학년 A 군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신적 고통을 토로했다. 사고 현장을 직접 경험한 이들뿐만이 아니다. 뉴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번 사고를 ‘간접’ 경험한 이들도 “영상이나 사진을 본 뒤 잠이 오지 않는다”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가 전 국민에게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전례 없는 ‘전 국민 트라우마’
심민영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가 그동안의 재난과 가장 다른 점은 ‘목격에 의한 충격’이 매우 크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참사 당일 약 13만 명의 시민이 이태원에 몰렸다. 이 중 상당수는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을 바로 눈앞 혹은 근처에서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 없었던 시민들 역시 모자이크 없이 SNS 등에 퍼진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참상을 간접 목격했다. 회사원 박모 씨(42)는 “사진에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무섭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여과 없이 사고 당시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참사가 벌어진 장소가 서울 한복판이라는 점도 충격을 더한 요인으로 꼽힌다. ‘바다 위 여객선’에서 발생한 2014년 세월호 참사와의 차이다. 정신건강복지 전문가인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 발생 장소는 누구나 방문하는 익숙한 공간”이라며 “‘유사한 참사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 “잊어버려” “운 좋았다” 말 삼가야

의료계에 따르면 재난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트라우마 반응’에는 공포, 불안, 슬픔, 극심한 배고픔, 두통, 위장 장애 등이 있다. 트라우마 반응을 방치하면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심 센터장은 “트라우마 반응이 생긴 뒤 회복될지, 더 큰 후유증에 시달릴지는 초기 대응에 달렸다”며 “재난을 겪은 직후 충분히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주변과 사회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면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라우마 반응이 1개월 이상 계속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진료가 필요할 정도의 반응은 △식사, 목욕, 옷 갈아입기 등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다른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강박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 등이다.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후 불안감이 지속되면 ‘안정화 기법’을 시도해 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양팔로 자신을 감싸고 토닥이는 ‘나비 포옹법’, 발이 땅에 닿아 있는 느낌에 집중하는 ‘착지법’ 등이 있다.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로, 긴장을 줄이고 불안한 생각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이태원 참사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지인이 있다면 말 한마디에도 주의해야 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는 재난 경험자에게 해서는 안 될 말로 ‘그만 잊어버려’ ‘더 나쁜 결과가 생길 수도 있었는데 운이 좋았다’ ‘금방 좋아질 거야’ 등을 꼽았다. 재난에 따른 고통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예단하거나 섣불리 조언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정부 “생존자-유족-목격자 심리상담 부스 설치”


합동분향소 2곳에 마음안심버스도
유족 등엔 먼저 연락해 대면상담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합동분향소에 설치된 심리상담 부스에서 한 시민이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상담을 받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은 누구나 여기에서 상담 받을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합동분향소에 설치된 심리상담 부스에서 한 시민이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상담을 받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은 누구나 여기에서 상담 받을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생존자 및 유가족, 목격자 등이 겪는 트라우마 대응에 나선다고 31일 밝혔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내에 ‘이태원 사고수습본부’를 꾸리고 이날부터 본격 가동에 나섰다.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과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는 조문객 등이 트라우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 부스가 설치된다. 마음안심버스도 이 장소에 배치된다. 참사 목격자와 시민 등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위기상담전화(1577-0199)로 전화해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복지부는 사고 생존자와 유가족 등 더 큰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사람에게는 먼저 연락해 심리 지원을 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유족 등의 연락처를 최대한 확보해 심리지원 전문 요원이 대면 또는 전화 상담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이후 장기적인 관리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가트라우마센터 내에 ‘이태원 참사 심리지원단’도 설치한다.

정부는 이번 참사 부상자들에게 치료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포함해 치료비 전체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우선 납부한다. 중상 환자 30명은 공무원을 1 대 1로 배정해 필요한 사항을 실시간 파악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경상자도 병원마다 파견되어 있는 공무원들이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사망자 장례비를 1500만 원까지 실비 지원하기로 했다. 또 필요하면 화장시설 운영시간을 연장하거나 예비 화장로를 운영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도권 내 54곳의 국가재난 대비 장례식장을 활용해 이번 참사 희생자들의 안치 공간이 부족하지 않게 지원하기로 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이태원 참사#전국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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