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두고 온 아내가 임신 3개월이었어요.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늘 말했었는데….”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지하 쪽방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모하메드 카티르 씨(36)는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사망한 고나갈라 무나우페르 씨(27)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무나우페르 씨는 이번 참사로 사망한 외국인 26명 중 유일한 스리랑카인이다.
이날 무나우페르 씨가 살던 이 쪽방에는 친구 3명이 모였다. 이들은 “술 담배를 할 줄 모르고 별다른 취미도 없이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친구”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무나우페르 씨는 4개월 전 스리랑카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임신한 아내를 두고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며 최근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한다.
무나우페르 씨는 암에 걸린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살던 가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밤 집 근처에 있던 해밀톤호텔 인근을 지나다 인파에 휩쓸린 뒤 빠져나오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외국인 가운데 이란인(5명)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내 이란인 커뮤니티도 비통에 빠진 분위기다.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이란인들은 해밀톤호텔 맞은편 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과 무슬림 거리를 방문하기 위해 평소에도 참사 현장을 빈번하게 오갔다고 한다.
이란인 부부인 알리, 아파그 씨는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10여 년 전 입국해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며 삼성전자에 재직했던 부부는 주말마다 이란 음식을 먹기 위해 이태원 나들이를 즐겼다고 한다. 최근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해 학업에 바쁜 가운데서도 주변 이란인들을 살뜰하게 챙겼는데, 이날도 20대 여성 소마예 씨와 함께 이태원에 방문했다가 셋 모두 함께 사망했다고 한다. 입국한 지 한 달 남짓 된 소마예 씨를 챙겨 함께 핼러윈을 즐기려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란인 사망자 5명 중 4명은 박사과정생이었고, 나머지 1명인 레이하네 씨(24·여)는 지난달 4일부터 국내 대학 한국어학당을 다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미국인 희생자 스티븐 블레시 씨(20)의 사연을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소개했다. 미 조지아주 케네소주립대에 재학 중인 그는 8월 한양대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아버지 스티브 씨는 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수억 번 칼에 찔린 기분”이라며 “아들을 잃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인 희생자 2명의 부모는 31일 한국에 입국해 자녀가 안치된 병원을 찾았다.
한편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외국인 사상자도 우리 국민에 준해서 가능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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