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엄마-이모와 함께 참변… 17년 단짝도 같이 희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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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핼러윈 참사]
안타까운 사연-눈물… 희생자 빈소

끝내 읽지 못한 SNS 메시지 31일 오전 전남 장성군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 A 
씨(19·여)의 빈소에서 유족이 A 씨와 나눴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A 씨의 카카오톡 대화명이 ‘귀여운막둥이♡’로 
적혀 있다. 장성=뉴스1
끝내 읽지 못한 SNS 메시지 31일 오전 전남 장성군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자 A 씨(19·여)의 빈소에서 유족이 A 씨와 나눴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A 씨의 카카오톡 대화명이 ‘귀여운막둥이♡’로 적혀 있다. 장성=뉴스1
“어린 아들을 남겨놓고 이렇게 가면 어떡하나요.”

31일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50대 여성 정모 씨의 빈소를 찾은 지인은 “금실 좋은 부부였는데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라 너무 걱정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구청 공무원인 정 씨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여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이태원을 찾았다가 셋 모두 참변을 당했다. 중학생인 정 씨의 조카(15·여)는 이번 참사의 최연소 희생자이고, 정 씨는 희생자 중 유일한 50대다.

빈소에서 정 씨의 첫째 딸과 둘째 딸 옆에 서 있던 초등학생 아들 A 군도 누나들과 아버지를 따라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정 씨의 남편은 “아내의 여동생과 조카는 다른 장례식장에 있다”고 말한 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구청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불릴 만큼 활달한 성격이었던 정 씨의 빈소에는 동료들의 조문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한 동료는 영정 사진을 보고 “○○아, 우리 ○○이 맞지? 이렇게 예쁜데…”라며 오열했다. 또 다른 동료는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고 사무실 분위기를 좋게 해줬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정 씨의 여동생과 조카의 빈소가 함께 마련됐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과 학생들은 나란히 걸린 두 모녀의 영정 사진을 보고 오열했다.
○ 미국 회계사 시험 붙은 외동딸 잃은 아빠
이날 광주 서구 매월동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B 씨(25)의 빈소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 졸업반인 B 씨는 지난달 29일 여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광주=뉴시스
이날 광주 서구 매월동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B 씨(25)의 빈소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학 졸업반인 B 씨는 지난달 29일 여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광주=뉴시스
31일 전국 40여 곳의 병원과 장례식장에선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을 그리는 유가족들의 통곡이 종일 이어졌다. 부모들은 아들과 딸의 사진을 끌어안고 가슴을 잡았고, 형제자매와 친척, 지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서울삼육병원엔 사망자 이모 씨(25·여)의 아버지(56)가 빈소를 지켰다. 그는 “우리 외동딸 1년 반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 씨는 미국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품고 그동안 친구들이 축제를 즐길 때도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1박 2일로 등산을 다녀온 아버지는 참사 다음 날에야 딸의 소식을 들었다. 언론 보도를 보고 놀라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경찰이었고, 참사 현장으로 가던 중 병원으로부터 딸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등산 가기 전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원래는 인사하러 나오던 딸이 그날은 방 안에 있었다”면서 “딸이랑 마지막 인사도 못 했는데 갔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빈소를 찾은 대학 동기 장모 씨(25)는 “미국 회계사 합격 소식을 듣고 이번 달에 만나기로 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 17년 단짝 친구도 함께 참변
이날 광주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7년을 함께 다닌 단짝 친구 2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B 씨(23·여)는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오후 3시경 아버지에게 전화해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놀러 간다”며 이태원에 갔는데 둘은 끝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아버지는 “딸이 몇 주 전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 ‘재밌게 놀다 오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부산 금정구의 한 장례식장엔 C 씨(32·여)의 빈소가 마련됐다. 촉망받던 컴퓨터 디자이너였던 C 씨는 참사 당일 남동생(19)과 함께 이태원에 갔는데, 남동생만 탈출하고 C 씨는 사망했다고 한다. 남동생은 최근 대학에 합격해 누나를 만나려고 서울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문객은 “엄청난 군중 속에 누나와 남동생이 같이 휩쓸렸고, 한 남성이 극적으로 동생을 구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누나는 끝내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 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어머니
경기 의정부 을지대병원에 안치된 D 씨(24)의 어머니는 딸의 사망을 믿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공학도인 D 씨는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중 스트레스를 풀러 이태원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어머니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이 어딨니”, “우리 ○○이 맞아?”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국의 소홀한 대응에 분통을 터뜨리는 유족도 적지 않았다. 이날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딸 박모 씨(27)의 빈소를 지키던 아버지는 “우리한테는 장례 지원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딸을 잘 보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이나 경찰이 빈소를 잡아도 되는지 여부조차 어제(지난달 30일) 저녁 늦게 알려줘 급하게 빈소를 잡았다”며 “우리는 그냥 개인적으로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연#희생자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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