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112 치안종합상황실이 대응 매뉴얼과 근무수칙을 여러 차례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 우려’ 등의 신고가 이어졌지만 상황팀장은 책임자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책임자인 상황관리관은 상황실을 비웠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112 매뉴얼 안 지켜져
참사 당일 오후 6시 34분부터 오후 10시 15분 참사 발생 직전까지 이태원역 해밀턴호텔 서편 골목 반경 100m 내에서 사고 위험을 알리는 신고가 총 11건 들어왔다. 인파 밀집이 심각하고 대형 사고가 일어날 것이 우려되니 즉각 경찰이 출동해 통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동일한 장소에서 여러 신고자가 비슷한 내용을 잇달아 신고한 것이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112 신고 접수·지령’ 매뉴얼에 따르면 “대형재난, 재해 등 신고가 예상되는 경우 접수자가 상황팀장에 통보하고 상황팀장이 모든 근무자에게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또 유사 시 상황팀장은 일과 중에는 112종합상황실장, 일과 후에는 상황실 당직 책임자인 상황관리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상황팀장의 사전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팀장이 류미진 상황관리관(인사교육과장)에게 보고한 건 참사 발생 1시간 24분이 지난 이날 오후 11시 39분이었다. 류 관리관에게 보고를 받았어야 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사고를 인지하고 3분 후였다.
●상황관리관은 근무지 이탈
상황관리관이 상황실을 지켰다면 이어지는 신고에서 위험 징후를 포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류 관리관(인사교육과장)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경찰 재난관리규칙’에 따라 재난관리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류 관리관은 근무수칙에 따라 오후 6시~다음날 오전 1시 상황실에서 대기했어야 했지만 자신의 사무실에 머물렀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상황관리관이 상황실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은 오랜 관행처럼 용인돼 왔다고 한다.
류 관리관이 김 청장과 경찰청 상황실에 보고하지 않으면서 서울청과 경찰청으로 이어지는 보고 체계에 구멍이 났다. 윤희근 청장은 참사 발생 1시간 59분이 지난 다음날 0시 14분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현장 대응도 112 매뉴얼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청 상황실이 신고 11건 중 8건을 위급한 상황을 뜻하는 ‘코드 0’, ‘코드 1’로 분류한 것까진 문제가 없었다. 이들 코드는 최단시간 내 현장 출동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 6건은 기록 상 출동이 이뤄지지 않았고, 1건의 경우 조치 내용이 불분명하다.
특히 코드0 신고는 매뉴얼 상 형사기동대, 인근 경찰관서 등과 공조해 출동하도록 돼 있지만 공조 출동도 이뤄지지 않았다. 동일 코드 부여 시 ‘다중 운집 등 사회적 관심도가 큰 사건을 우선 출동하도록 한다’는 지침도 지켜지지 않았다.
●112신고→행안부 전달되도록 법 개정
전문가들은 112신고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은 112신고 중 범죄 부문에 치중해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찰이 재난 신고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인식과 대응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참사 당시 경찰 신고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 전달되지 않았던 보고 체계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119와 달리) 112 관련 사항들은 저희가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다”며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을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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