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글을 읽을 수 없을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점자’를 사용합니다. 점자란 표면에 튀어나온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해서 만든 문자로, 촉각을 사용해 읽고 쓸 수 있습니다.
점자는 1808년 프랑스 장교 샤를 바르비에가 군사적 목적으로 처음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군사적 활용성이 떨어져 군에서는 폐기했고 이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2점 방식’이어서 배우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6점 방식’의 점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인 루이 브라유입니다.
브라유는 3세 때 아버지 작업장에 갔다가 날아온 송곳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후 브라유는 파리 맹아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당시 사용하던 점자는 매우 어려웠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도 몇 권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브라유는 자신이 직접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824년 15세의 브라유는 점 6개만으로 알파벳 26개를 표시하는 방식의 점자를 만들어 냅니다.
브라유의 점자는 1868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식 문자로 지정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습니다.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점자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926년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는 한국식 점자를 만든 박두성(1888∼1963·사진)은 지금의 인천 강화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박두성은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가 됩니다. 그러다가 1913년 장애인 교육기관이었던 제생원 맹아부(현 서울맹학교)에 들어가 시각장애인 교육에 힘쓰게 됩니다.
그 당시 시각장애인은 일본어를 기초로 제작된 점자책으로 교육받았습니다. 이런 현실이 불만스러웠던 그는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해 1923년에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합니다. 마침내 1926년 6개의 점으로 구성된 한글 점자를 훈맹정음이란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일제는 국가가 교과서를 승인하는 검인정교과서 제도를 통해 한국어 교육을 탄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글 점자로 된 ‘조선어독본’을 출간했습니다. 훈맹정음으로 성경과 명심보감 등 76종의 책을 만들고, 훈맹정음 학습서와 점자판을 나누어 주며 한글 점자 보급에 힘썼습니다. 그 덕분에 1935년 부면협의원선거에서는 시각장애인들도 처음으로 한글 점자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시각장애인도 사회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헌신으로 박두성은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오늘은 ‘한글 점자의 날’입니다. 박두성이 훈맹정음을 만들어 반포한 11월 4일을 기념해 제정된 겁니다.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만이 아닌 훈맹정음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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