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서울 중구 시청역 일대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김나겸 씨(20)는 허공을 바라보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씨는 “희생자와 같은 또래라 더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에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5일 시민들은 서울 도심 곳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와 사고 현장, 추모 집회를 찾아 참사 희생자를 애도했다.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김경은 씨(52)는 중학교 1학년인 딸과 함께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사고 현장을 다녀왔다고 했다. 김 씨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기지 않는다”며 “관련자들이 책임을 진대도 죽은 아이들이 돌아올 수 없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김 씨의 딸인 양규리 양(13)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합동분향소에서 눈물을 훔치던 이가연 씨(22)는 이번 참사로 지인을 잃었다고 했다. 이 씨는 “소식을 너무 늦게 알아 빈소에 못 가서 합동분향소에서나마 명복을 빌고자 왔다”며 “모두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고 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앞 합동분향소에도 이날 오전부터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녹사평역 인근에 사는 김호윤 씨(26)는 “그동안 마음이 안 좋아서 오지 못하다가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왔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전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미국인 여행객 다이애나 씨(37)도 “미국인 사망자도 있다고 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기도하고 싶어 왔다”고 했다.
사고 현장 근처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도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7살 아들을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이태양 씨(38)는 “마지막 날인 만큼 아들과 같이 와서 언니 오빠들이 왜 하늘나라에 갔는지, 남은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말해줬다”고 했다.
이날 서울 도심 곳곳에선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진보 성향 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날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서울시청 인근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다. 시청 앞 교차로부터 숭례문 교차로까지 약 400m 길이 5개 차로는 집회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추모 집회에 동참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경까지 이어진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5만 명(경찰 추산 9000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매뉴얼이 분명했고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정부가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고, 정부의 직무 유기 범죄가 참사를 발생시켰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촛불집회는 ‘윤석열은 퇴진하라’, ‘퇴진이 평화다’ 등 피켓을 든 참가자들도 적지 않았다.
보수 성향 단체가 주최한 추모 집회에서는 정반대의 정치적 구호가 나왔다. 신자유연대는 이날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주최한 ‘추모 집회 반대 및 윤석열 정부 퇴진 반대’ 추모 집회를 열었다. 촛불행동 추모 집회에 대한 ‘맞불 집회’다. 현장에는 ‘정치적으로 이용 말자’ 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신자유연대 김상진 대표는 “촛불집회에서 온갖 선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추모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며 “이번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이유를 밝히고 법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그런 추모 집회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다른 추모 집회와 행진들도 열렸다. 청년단체들은 오후 2시경 이태원역 4번 출구 앞에 모여 약 150여 명이 대통령 집무실 인근까지 약 1.5km를 침묵 속에 행진했다. 이들은 ‘6:34 우리에게 국가는 없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전쟁기념관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숫자 ‘6:34’은 사고 관련 112 신고가 처음 접수된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을 뜻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