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수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서울과 경남 진주, 심지어 제주까지 가서 ‘유학’해야 한다. 부산에는 수의사 양성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대가 수의과대학 신설을 본격 추진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부산대는 수의과대 설립을 교육부에 공식 요청했다고 8일 밝혔다. 지난달 26일 부산대가 제출한 ‘설립요청서’에 따르면 부산·양산캠퍼스 약 32만 m²에 교육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이곳에서 수의연구실험과 산업동물, 가축방역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것. 신입생 정원 40명에 교수 등 전문 교원 20명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설립요청서에 명시했다.
부산대는 또 한국반려동물산업협회와 ‘부산대 수의과대학 설립 및 반려동물 분야 교육연구 등 산학협력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4일 맺었다. 반려동물협회는 이날 부산대의 수의과대 설립을 지지하고 협력과 연대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대는 전국 거점 국립대 10곳 가운데 부산대에만 수의과대가 없다는 점을 학과 신설이 필요한 핵심 근거로 강조한다. 부산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후 인수 공통 감염병 전문가의 필요성이 커졌으나 부산에는 이런 인재를 양성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국내 ‘반려가구’는 604만 가구로 한국 전체 가구의 약 30%를 차지한다. 국내 209만2000마리의 반려견 중 경기도가 60만5000마리로 가장 많고, 서울이 40만8000마리, 부산은 15만4000마리로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부산지역 15개 4년제 대학에는 수의과대가 한 곳도 없다. 수의과대는 교육부와 농림축산신품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승인을 통과해야 학과를 신설할 수 있는데, 1989년 충북대가 수의학과를 설치한 뒤 30년 넘게 전국에서 관련 학과 신설이 중단됐다. 수의사협회 등 관련 업계가 ‘수의사 과잉 배출’ 등을 우려하며 학과 신설을 반대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국의 수의과대 입학생과 졸업생 수는 30년 넘게 매년 약 500명으로 일정하다. 반려동물이 급증하는 것에 비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이유다.
약 10년 전부터 수의과대 신설을 검토했던 부산대는 차정인 총장이 2020년 취임한 뒤 ‘수의과대학 설립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나섰다.
부산대는 동물을 치료하는 임상 전문가 양성에 그치지 않고, 야생·희귀동물 치료와 산업동물 복지 등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는 것으로 학과를 특성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미 학교에 의대와 약대를 비롯해 동물생명자원학과 등 의생명과 관련된 학과가 운영 중이어서 수의과대만 있으면 관련 연구에 시너지가 생긴다는 것.
부산대 관계자는 “김해국제공항과 부산항 등이 있어 우리나라의 관문 역할을 하는 부산의 가축방역 고도화를 위해서도 수의과대는 꼭 필요하다”면서 “교육부 등에서 수의과대 신설안이 통과되면 2024학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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