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친환경 사업장이라 인증한 기업에 대해 각종 규제를 면제해주는 ‘녹색기업’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관련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정 뒤 환경법령을 위반하는 기업도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녹색기업 제도는 사업장이 매연·폐수·폐기물 등 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경영 노력을 한 뒤 그 실적을 지방·유역환경청에 제출하면 환경청이 심사를 거쳐 해당 사업장(기업)을 녹색기업으로 지정하고 오염물질 정기점검과 같은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기업 스스로 오염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경영을 하게 유인하고자 1987년 처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대기·수질오염 물질과 같은 오염물질을 줄이려는 목적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2011년부터는 녹색기업 평가기준에 온실가스 배출량과 저감 노력을 평가하는 항목도 생겼다.
하지만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기업들의 최신 온실가스 확정자료를 살펴본 결과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 확정치 기준으로 녹색기업 89곳의 온실가스 총 배출량만 3425만t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전체 광물산업 공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3230만t)보다 많다.
사업장 한 곳당 평균 40만t 꼴인데, 이 정도면 일반 유류를 사용하는 선박 500여 척을 친환경 선박으로 바꿨을 때 감축할 수 있는 온실가스 양이다. 2020년 녹색기업 수는 128곳인데 일부는 현재 기준으로 지정이 취소된 상태고, 일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확인되지 않아 집계에서 뺐다.
온실가스를 400만t 넘게 배출한 한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30개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기업은 지난해에도 400만t 가까운 온실가스를 내뿜었고 역시 녹색기업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사업장이 녹색기업에 들어가 있는 이유는 현재 녹색기업 전체 평가항목에서 온실가스 항목이 차지하는 배점이 너무 적고 점수 편차 또한 얼마 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평가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의미다.
환경부에 따르면 녹색기업 심사 시 온실가스와 관련한 배점은 전체 700점의 약 11%다. 배점 자체가 크지 않다. 그런데다 온실가스는 대기·수질오염물질처럼 절대적으로 정해진 배출 기준치가 없기 때문에 배출권 거래제에서 각 기업에 할당한 배출량을 기준으로 심사한다.
실제 배출량이 기업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량과 비슷하거나 적으면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보고 점수를 주는 식이다. 그런데 할당량보다 많이 배출한 기업은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할당량을 잘 지킨다는 게 문제다. 즉 녹색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 항목을 평가할 때 기업 간 편차가 크지 않아 평가로서의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녹색기업이 애초 오염물질 저감에 더 무게를 둔 제도였기 때문에 온실가스 저감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염물질 저감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여수산업단지 대기오염물질 측정기록부 조작사건이 터졌을 때 적발 사업장 11곳 중 7곳이 녹색기업이었다. 지난 국정감사 때는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녹색기업의 환경법규 위반이 108개 사업장 142건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에 따르면 한 녹색기업에서 만든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과다 검출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녹색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면서 기업들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2년 207개소에 이르던 녹색기업의 수는 지원 기업의 감소로 2022년 현재 105개소로 반 토막이 났다.
전문가들은 녹색기업의 취지를 살리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온실가스 평가 현실화하고 배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환경연구원 한대호 박사는 “규제를 현실화하는 한편으로 규정을 잘 준수한 기업에 대한 혜택도 늘려야 기업 스스로 줄이고 혜택을 받는다는 녹색기업의 원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녹색기업 제도 전반을 손보기 위해 용역연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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