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은 명단 공개? 유족 동의 얻어야… 과거 국내언론도 실명 공개? 세월호 후 신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8일 03시 00분


[팩트 체크]이태원 희생자 명단공개
NYT “취재원 설득 동의 얻어야”
“희생자 이름만으로는 특정 안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보긴 어려워

인터넷 매체 ‘민들레’와 ‘시민언론 더탐사’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하면서 ‘주요 외신의 실명 보도’를 근거로 들었지만 외신도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최대한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외신 “유족 동의 있어야만 실명 보도”
민들레 측은 13일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선 깊이 양해를 구한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민들레는 “이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외신은 국내외 희생자 상당수의 사진과 사연을 실명 보도한 바 있다”면서 명단 공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확인한 결과 주요 외신의 실명 보도는 민들레 등과 달리 유족의 동의를 구한 뒤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외신 기자는 ‘최근 실명 보도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족의 사연은 모두 유족들의 동의를 구했다. 공개를 거절한 경우에는 보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보도 가이드라인에서 “실명 보도는 취재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워싱턴포스트도 내부 방침으로 “기자는 실명을 기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취재원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승선 한국언론법학회장은 “주요 외신은 희생자 실명 공개 시 유족의 동의를 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 “공인 아니면 실명 보도 자제”
민들레는 “한국 언론도 과거 대형 참사에선 희생자 이름과 나이, 성별 등 명단을 공개했다”면서 과거 언론 보도 사례를 들었다.

실제로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과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때 다수의 언론이 희생자 명단을 보도했다. 당시 언론의 희생자 명단 보도는 가족들에게 사망 및 구조 여부 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인이 아닌 이들에 대한 실명 보도를 자제하는 추세다.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당시 동의 없이 부상자 사진을 보도한 언론사가 ‘초상권 침해’ 손해를 배상했다. 민들레가 언급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은 소수에 그쳤다. 이후 발생한 헝가리 유람선 침몰(2019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2020년) 때 희생자 명단을 보도한 곳은 거의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된 ‘재난보도준칙’ 역시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희생자 명단 공개는 긴요한 것인지를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며 “과거의 관행은 당시의 필요성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했다.

○ “이름만으로는 법률상 개인정보 아냐”
민들레 측은 명단을 공개하면서 “얼굴 사진, 나이 등 다른 인적 사항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름만 공개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많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사망자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경진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도 “유족이 개인정보 침해를 인정받으려면 실명 공개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다른 인적 사항이 없는 명단만으로는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팩트체크#이태원 희생자#명단공개#실명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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