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에 진심인 사회로]〈18〉학교앞 사망사고 올해 0명
등하교 1시간반씩 스쿨존 운영… “단속보다 처벌 강화해 경각심”
규정 강화후 사망 5년간 3건뿐… 건널목 감독관 교통지도도 도움
2일 오전 7시 반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시드니 북부의 한 사립초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20여 분 전 딸(6)과 집을 나온 장승우 씨(37)의 차량이 학교 안으로 진입한 후 정문 쪽에 마련된 ‘드롭(픽업)존’에 정차했다.
NSW주는 스쿨존 운영 시간에 지정된 임시주차장 정차를 허용한다. 장 씨처럼 부모 차량으로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다. 배웅이 끝나면 장 씨는 집으로 돌아가 주차한 후 지하철로 회사에 간다.
호주는 오전 8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오후 2시 반부터 1시간 반 동안 스쿨존을 운영한다. 그러나 운영시간과 상관없이 이날 제한속도인 시속 40km를 넘어 운행하는 차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장 씨는 “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어기거나 경적을 울리는 차를 본 적이 없다.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 스쿨존 규정 어겼다간 최대 수백만 원 벌금
이달 1∼3일 동아일보 기자가 시드니 시내 스쿨존 4곳을 살펴본 결과 안내 표지판은 한국보다 크기가 작았고 잘 안 보이는 곳에 설치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스쿨존을 정확히 인식했고, 과속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차량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시드니 남부의 한 공립초교에서 만난 학부모 니나 팻 씨(39)는 “스쿨존으로 들어간다는 내비게이션 안내가 나오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제한속도를 어기면 최소 수백 달러(수십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NSW주는 가혹한 법 집행으로 유명하다. NSW주는 2003년 말부터 3000개 이상의 학교와 교육시설에 스쿨존 제도를 운영 중인데 차종과 운전면허증 등급, 법규 위반 정도에 따라 196∼3996호주달러(약 17만6000∼359만5000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11년 전 한국에서 시드니로 이민 온 내털리 한 씨(38)는 “남편이 스쿨존에서 규정 속도보다 시속 10km를 초과해 벌금이 나왔다”며 “벌금을 감면받으려고 정부 기관을 상대로 소명 절차를 밟았지만 ‘일반 도로가 아닌 스쿨존에서는 어떤 사유도 예외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벌점도 큰 부담이다. 호주 스쿨존에서 규정을 위반하면 다른 도로 위반 시의 2배 이상인 2∼7점의 벌점이 부과된다. NSW주에선 3년간 13점 이상 받으면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다. 취소되면 120시간 의무교육을 다시 받아야 재취득이 가능하다. 스쿨존에서 두세 번만 속도 제한을 어겨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것이다.
○ 올해 스쿨존 사망자 ‘0’명
NSW주는 스쿨존 처벌 규정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2017년에는 벌금과 벌점 수준을 높이고 주정차 규제를 추가했다. 2020년엔 시드니 북동부 도시 맨리와 남서부 도시 리버풀 스쿨존의 제한속도를 시속 40km에서 30km로 줄였다.
강도 높은 벌금과 벌점 등의 영향으로 최근 5년간 NSW 스쿨존(운영시간 기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9년 두 건, 2020년 한 건 등 총 3건에 불과했다. 올해는 이달 9일까지 단 한 건의 사망 사고도 없었다.
특정 시간에만 스쿨존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NSW주 측은 “예산의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린이들이 많이 이동하는 시간대에 집중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피터 던피 NSW주 대중교통안전·보안·비상관리실장은 “단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1500여 명의 건널목 감독관을 고용해 스쿨존에서 학생들의 등하교를 돕게 하고, 학교별로 임시 주정차 운영 지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NSW주의 특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NSW주의 인구밀도는 km²당 3.59명으로 서울(1만5699명)의 0.02%에 불과하다. 데이비드 레빈슨 시드니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면적이 넓다 보니 예산과 인력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단속보다 높은 처벌 규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빈슨 교수는 “한국에 NSW주 사례를 직접적으로 적용하긴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앞으로 운전자에게 중심을 두고 디자인된 교통 시설물이나 신호 체계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꿔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는데 이는 한국과 호주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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