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사용 불편하게 했더니… 빨대 사용량 21% 줄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2일 03시 00분


[Green Action!]
일회용품 줄이기, 규제를 넘어 문화로
〈1〉본보 ‘일회용품 줄이기’ 실험

4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손님이 개인용기(텀블러)로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tomato99@donga.com
4일 오후 서울 강동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손님이 개인용기(텀블러)로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tomato99@donga.com
한국인이 1년에 400억 개씩 쓰고 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일회용 컵’과 ‘빨대’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에서 소비되는 일회용 컵(종이·플라스틱)은 연 294억 개, 빨대(플라스틱)는 106억 개다. 국민 한 명당 연간 일회용 컵 570개, 빨대 206개를 쓰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배달 취식이 늘면서 일회용품 사용량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이달 24일부터 카페와 식당에서 매장 내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등 일회용품 규제를 확대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규제가 매장 내로 제한적인 데다 단속도 1년간 유예되면서 일회용품을 획기적으로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규제를 넘어 시민들의 일회용품 사용 문화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가 서울 강동구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일회용품 줄이기’ 실험에 나선 이유다.
○ “일회용품 사용 불편”… 사용량 줄어

취재팀은 이달 3, 4일 각각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커피전문점 내부에 서로 다른 환경을 조성했다. 첫날(3일)에는 일회용 빨대, 컵홀더 등 일회용품을 매장 곳곳에 비치했다. 또 일회용 컵을 카운터 직원과 무인단말기(키오스크)에서 모두 주문이 가능하게 했다.

둘째 날(4일)은 매장 곳곳에 놓여 있던 일회용 빨대와 컵홀더를 모두 치웠다. 그 자리에 ‘일회용품이 필요하면 매장 직원에게 요청해 달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무인단말기에서는 일회용 컵 주문을 할 수 없게 했다. 또 일회용 컵은 반드시 직원에게 주문해야 한다고 공지했다.

그 결과 이틀간 카페 내에서 소비된 일회용 빨대와 컵홀더, 종이·플라스틱컵 수는 큰 차이를 보였다. 3일 소비된 일회용품 수는 컵(종이·플라스틱)은 64개, 빨대는 88개, 컵홀더는 44개였다. 4일에는 컵 57개, 빨대 71개, 컵홀더 28개였다. 음료 전체 판매량은 3일(178잔)과 4일(182잔) 사이 별 차이가 없었다. 이틀간 음료 전체 판매량을 감안하면 4일 컵, 빨대, 컵홀더 사용량은 3일에 비해 각각 12.9%, 21.1%, 37.8% 줄었다.

기자는 이틀간 매장 손님들의 행태도 관찰했다. 3일은 주문한 음료 수보다 많은 빨대, 컵홀더 등을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무인단말기에서도 손쉽게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주문했다. 반면 4일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은 전날과 달리 일회용품 이용을 번거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커피전문점을 찾은 두 여성은 무인단말기 앞에서 “(일회용 컵) 무인 주문 안 된다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냥 매장에서 먹고 갈까”라고 대화를 나눈 후 다회용 컵 이용을 선택했다. 다회용 컵으로 음료를 주문한 윤유진 씨(22·여)도 “일회용 컵으로 주문하려면 꼭 카운터 직원에게 가야 한다니 불편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일회용 빨대와 컵홀더를 찾다가 ‘직원에게 요청하라’는 안내를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뒤 빨대를 가져가지 않는 한 남성 손님에게 이유를 묻자 “(직원에게) 달라고 하려니 귀찮았다”고 말했다.
○ 다회용기를 ‘기본값’으로
빨대와 홀더를 가져가더라도 꼭 필요한 양만 쓰는 경우도 많았다. 차가운 음료 3잔을 주문한 유동원 씨(23)는 직원이 “빨대랑 컵홀더 몇 개 드릴까요”라고 묻자 “빨대 2개, 컵홀더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왜 빨대와 컵홀더를 음료 수만큼 받지 않았냐’고 묻자 유 씨는 “직원이 물으니 ‘내가 정말 얼마만큼 필요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며 “꼭 음료 수만큼 받을 필요는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실험 결과를 본 전문가들은 시사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국내 대부분의 식·음료 매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일회용품을 너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그런데 일회용품 사용을 번거롭게 만드니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던 양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도 “1990년대 이전에는 국내 식당과 커피전문점에서도 다회용기 제공이 ‘기본값’이었다”며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패스트푸드와 테이크아웃 커피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일회용기 제공이 기본이 됐다”고 밝혔다.

매장 내 식음료 판매 문화를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등을 사용하기 어렵게 바꾸거나, 다회용기 편익성을 높여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다회용기 이용을 편리하게 한 매장에서 짧은 시간 내에 다회용기 이용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전문점 커피빈의 경우 올 8월부터 무인단말기에서 다회용기뿐 아니라 개인용기(텀블러) 주문도 가능하도록 했다. 카운터와 무인단말기 모두 주문이 가능해진 9, 10월 개인용기 판매량은 카운터에서만 개인용기 주문이 가능했던 5, 6월보다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커피전문점도 2020년 무인단말기에 개인용기 선택 기능을 추가한 뒤 개인용기 사용자가 30% 늘었다고 밝혔다.

#green action!#일회용품#빨대#종이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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