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총체적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살인입니다. 10월29일 오후 10시15분 이태원 도로 한복판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 국가는 없었습니다.”(고 송은지씨 아버지)
‘이태원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요구사항을 밝히고 심경을 전했다. 참사 후 유가족이 언론 앞에서 입장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 전담조직)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자회견에는 희생자 유가족 28명이 참석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와 후속조치 약속 △책임자를 상대로 한 성역없고 엄격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정부의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 마련 등 6가지 요구조건을 발표했다.
발언자로 나선 고(故) 이지한씨의 어머니는 “초동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인재이자 부작위에 의한 참사”라며 “저도 남편도 지한이도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는데 대통령님이 우리 청년들이 다시는 어처구니없이 생매장당하지 않도록 엄하게 처벌해 줄 것으로 믿는다”며 울먹였다.
고 이남훈씨의 어머니는 “이 순간에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들의 영정 대신 웃고있는 생전 사진을 품고 있다”며 “아들의 사망진단서에 사망일시도 추정, 장소는 노상, 사인은 불상으로 돼있는데 어느 부모가 사인도 장소도 알지 못하고 자식을 떠나보내냐”고 흐느꼈다.
이씨의 어머니는 이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모른 채 저는 기다리기만 했지만 이제 다른 유가족과 함께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철저히, 명확히 밝히는데 동참하려 한다”며 “책임있는 자들은 책임을 지고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희생자 고 이민아씨의 아버지라고 밝힌 이종관씨는 “참사 이후 정부가 유족 모임 구성이나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에 도움을 준 적이 없으며 사고 발생 경과와 내용, 수습 상황, 기본권리 등도 알려주지 않는 등 기본적 조치조차 하지 않았다”며 “참사 17일이 지나서야 수소문 끝에 겨우 유족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이씨는 “유족끼리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정부가) 처음부터 제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장례비와 위로금은 지급하면서도 정작 유족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공간은 참사 24일이 넘도록 왜 마련해주지 않는거냐”고 물었다.
이날 유가족 중에는 기자회견 도중 오열하다 쓰러져 부축받아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서채완 민변 TF 변호사는 “민변에 연락 온 가족은 희생자 (158명 중) 34명의 유가족이며 추가로 연락하는 분도 있다”며 “이번 여섯가지 요구사항은 지금까지 모인 유가족과 함께 이야기한 것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변호사는 또 “유가족 일부는 댓글 등을 통한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으며 법적 조치를 취할 의사가 있는 분도 있다”며 “TF 소속 변호사들이 유가족과 협의해 정부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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