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눈높이 교육이 가능한 서당교육이 학교 교육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한재우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사무총장(49)의 말이다. 한 사무총장은 현재의 학교 교육을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맞는 교육”이라고 정의하며 “개인의 소질과 적성, 소통이 중시되는 시대에 전통과 도덕을 바탕으로 인성을 중시하는 서당교육이 재조명돼야 한다”고 했다.
검은색 두건과 흰색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인터뷰에 응한 한 총장은 온화한 목소리로 세계 흐름과 한국의 현실을 진단하며 한국의 전통 학교 교육인 서당교육의 장점과 활용방안을 설명했다. 인터뷰는 3일 동아일보사에서 이뤄졌다.
-서당의 맞춤형 교육을 설명하신다면….
“김홍도의 서당도에 서당교육의 대강이 있습니다. 그림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학동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땋은 어린 학동(學童)부터 갓을 쓴 나이 든 관동(冠童)까지 한 방에 모여 있습니다. 수준별 맞춤 교육이 서당에서 이뤄졌던 것이지요. 또한, 서당에는 훈장님과 학동의 수직적 문화와 학동끼리의 수평적 문화가 있습니다. 그림에는 없지만, 서당에서는 훈장님께 공부를 점검받기 전 윗사람이 먼저 점검했습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돌봐주며 훈장의 자질을 키웠고, 아랫사람은 예습과 복습을 한 것입니다. 서당도에서 훈장 오른쪽에 갓 쓰고 앉아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주로 돌봐주던 관동입니다.”
한 사무총장은 한 방에 다양한 또래의 학동이 모여 있는 데서 놀이와 소통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도 서당교육의 장점이라고 했다. 공부와 경쟁만이 판치는 지금의 교실과 달리 서당에는 공부도 하지만 배려와 공감도 있다는 것이다. 서당은 지역공동체 토론의 장이기도 했는데 서당의 토론 문화가 자연스레 확산된 덕분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한 사무총장은 학교 교육 대신 서당교육만 받았다. 8세부터 23세 때까지 남원서당, 구례 초동서사, 광주 덕산정사에서 성리학을 중심으로 수학했다. 민족종교협의회장을 지냈던 부친인 해평 한양원 선생이 한 사무총장이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학교와 서당을 스스로 선택하라고 한 말에 주저 없이 서당에 가겠다고 했던 것은 “서당에서 또래와 형들과 함께 어울렸던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양원 선생은 훗날 “미래는 도덕에 바탕을 둔 정신문화가 꽃피우고, 서당교육은 여기에 필요한 자질을 길러주기에 네가 가기를 원했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고. 한 사무총장의 스무 살 아들도 머리를 땋고 서당교육만 받고 있다고 한다.
-서당교육을 재평가하려면 한국 전통문화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일반의 인식을 넘어야 하는데요.
“전통문화는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 보편타당한 예절이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장유유서를 예로 들면 어른이기에 높여주는 것보다는 상호 존중이 예절의 기본입니다. 나이, 생각, 성별이 달라도 화합하기 위해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예절이 지금 시대에 더욱 필요합니다. 서구화된 생활양식으로 좌식 생활은 점차 사라지는데 어른 앞에서 양반다리를 하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걸 지켜야 할 장유유서로 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하는 것보다 SNS로 인사드리고 가끔은 기프티콘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더 효의 정신에 맞습니다. 우리가 전통문화에서 강조하는 것은 필요한 것은 취하고, 불필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시켜 활용할 수 있도록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서당교육에서는 한국 전통문화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습니까?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사람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인문학에 있습니다. 서당교육의 지향점도 같습니다. 서당의 인문학 교육은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에게는 창의력과 기본 가치의 중요성을, 기술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기술에 매몰되지 않도록 도움을 줍니다. 서당 인문학은 인성교육과 예절문화가 바탕인데,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로 보기 때문이지요.” -좋은 전통을 가진 전통 서당이 명맥을 잇기 힘들 정도로 위축됐습니다.
“지금 전국에는 44개의 전통 서당만이 있고 훈장은 32명에 불과합니다. 서당이 이렇게 쪼그라든 것은 현대 교육의 확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의 서당 박해와 서당교육의 강점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일제가 서당을 박해한 것은 서당이 독립운동의 지역거점이었고, 3·1 만세운동의 구심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 안중근 열사, 윤봉길 열사 등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분들 중에는 서당에서 수학하신 분이 많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영명학당에서 수학 후 이화여전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서당이 민족의 중심이 되는 걸 방해하기 위해 상세한 조사를 통해 1918년 서당규칙을 만들고 서당 증설을 억제했을 뿐만 아니라 탄압했습니다. 서당 수는 탄압 전 1910년대 1만6540개였지만 탄압 후인 1920년대는 2만5942개로 급증했다가 본격적인 탄압이 이어진 1930년대는 1만36개로 급감했습니다.”
한 사무총장은 학생 감소, 도덕적 인재 양성 무관심으로 1600년 이상 전통을 가진 서당문화가 단절 위기에 처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는 찾아가는 예절 서당, 서당 스테이, 사이버 예절 서당 등 전통 서당의 가치를 알리는 다양한 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달 전북 남원에서 열린 ‘서당문화한마당’ 축제가 20회나 맞이한 것도 서당문화의 가치들을 알리려는 진흥회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서당교육이 학교 교육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한국 교육문화 전통이 전통 서당을 통해 이어지도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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