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이 25일로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이 총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바탕으로 UNIST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UNIST는 지난 10년간 풍부한 재정지원, 열정적인 교수진, 뛰어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2027년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위해 뛰고 있는 이 총장을 10일 UNIST 총장실에 만나 대학발전 전략을 들어봤다.
―취임 3주년을 맞은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취임하면서 ‘해야 할 일을 잘하는 대학’을 강조했습니다. 구성원들의 협력 덕분에 인공지능(AI)대학원, 반도체소재부품 대학원, 탄소중립 대학원, 의과학 대학원을 만드는 등 계획한 일을 대부분 이뤘습니다. 또 분권형 체제의 대학 운영을 정착시켰습니다. UNIST는 성장했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이 총장이 말하는 ‘해야 할 일’은 울산과학기술원법에 규정된 국가 첨단과학기술 혁신과 고급과학기술 인재 양성, 지역산업 기술 지식 발전 주도를 뜻한다.
―무엇이 힘듭니까.
“연구중심대학의 성과는 연구 수준에 달려 있고 연구 수준은 연구장비 성능에 달려 있습니다. 1000억 원가량의 연구장비가 있는 중앙연구센터(UCRF)의 연구장비 교체 주기가 됐는데 예산 마련이 쉽지 않습니다. 50억 원짜리 원자현미경(AFM)을 새로운 버전으로 바꾸는 것과 장비 운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매니저들의 증원 및 처우 개선이 시급합니다. 연구장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니저의 중요성을 한국은 잘 모르지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는 연구자들과 장비 매니저들의 전문성이 융합해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AI 대학원을 유치한 것입니다.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알파고가 불러온 인공지능 이슈가 과학기술계의 주요 어젠다여서 정부도 AI 대학원 신설을 서둘렀습니다. 정부 과제로 나온 AI 대학원 유치를 위해 젊은 교수 4명과 함께 팀을 짰습니다. AI 대학원 유치 1년 후인 2021년 AI혁신파크를 출범시켜 울산 및 동남권 AI 혁신 및 산업 혁신 허브를 지향할 수 있게 됐습니다. AI 연구 인프라 강화로 인해 AI 인접 분야인 전기전자, 전산 전공 교수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AI 대학원을 유치하기 전에는 연구 인프라가 없어 AI 전공 교수들이 떠났는데 반전된 것입니다. 또 AI 교육·연구·창업보육을 통해 전통 제조도시 울산이 스마트 첨단산업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정부 사업에 총장이 직접 뛰는 것은 드문 일인데요.
“전공(전기전자)이 AI와 멀지 않고, KAIST에 있을 때 리더가 앞장서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교수들과 사업 유치를 위해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접근했고 역할을 나눴습니다(이 총장은 KAIST 재직 시절 공대학장,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업무에도 밝다.). AI가 지역산업과 관계가 없는데 왜 유치하느냐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AI가 지역의 중후장대 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요?
“연구센터를 더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에너지 분야가 제일 센데 캠퍼스 내에 연구할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캠퍼스와 붙어 있는 임야 14만8500m²(약 4만5000평)를 개발해 ‘UNIST 에너지 실증파크’로 만들면 에너지 파일럿 플랜트 기능이 가능합니다. 두 번째로는 학교 앞 선바위 개발지구 사업에 9만9000m²(약 3만 평) 규모의 UNIST 의료복합타운인 ‘울산판 캔들 스퀘어’를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UNIST의 강점은 무엇이고 이것을 더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의욕적인 젊은 교수들이 많은 것이 강점이고, 교수들이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연구 환경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2021년에 교수들에게 수직형 교과목 개발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수직형 교과란 단기간에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는 실무중심 교과목을 말한다.). 교수들이 강의 부담과 연구 과제 등으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올해까지 29개의 수직형 교과목을 개발했습니다. 다른 대학에서 교육과정 개발을 실적으로 인정할 만큼 교육과정 개발은 힘듭니다. 교수들에게 더 훌륭한 연구와 교과목 연구에 매진하라고 1년 3개목 강의에서 2과목 강의로 부담을 줄였습니다. 전통적 강의에 매달리는 대신 130여 개의 학생 연구 동아리 지도 등 학생들에게 실전적 능력을 키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UNIST는 개교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최고의 연구중심대학 반열에 올랐습니다. 더 성장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최고의 연구그룹을 만드는 것입니다. 최고의 연구그룹은 수도권과 해외의 연구자들을 울산으로 불러들이는 ‘자석’입니다. 연구자들은 최고 수준의 연구가 이뤄지는 곳에서 연구하고 싶어 합니다. 프로 선수들이 우승을 많이 하는 구단에서 뛰고 싶은 것과 같습니다. 최고의 연구그룹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모가 커져야 합니다. 교수도 모자라고 학과 규모도 작습니다. 우리가 강한 에너지화공 쪽 교수가 40명에 불과한데 50∼60명은 돼야 합니다. 전체 교수도 340명에 불과한데 100명 정도 늘려야 합니다. 세계 톱클래스인 MIT는 교수 1000명이고, KAIST는 670명 정도 됩니다. 전임 교원 평균 연령이 46세인데 교수는 50세가 되면 노화합니다. 1년에 5∼10명 뽑아서 10년 후 교수 은퇴가 시작될 때 젊은 교수들이 역할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최고의 연구그룹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중요합니다. 교수들 호봉이 올라 인건비가 해마다 50억 원씩 증가하고 있지만 총 인건비의 56.3%를 대학이 해결하고 있어 재정적 부담이 큽니다. 다른 과학특성화 대학에 비해 UNIST는 더 많은 인건비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김두겸 울산시장님께 UNIST에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총장이 김 시장에게 재정 지원을 요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UNIST의 급성장 배경에는 울산시가 10년 동안 지원했던 150억 원의 블록 펀딩(대학 의사대로 쓸 수 있는, 조건이 붙지 않는 돈)을 우수 연구자 유치와 연구시설을 갖추는 데 활용한 데 있었다.
UNIST는 5월 발간한 ‘UNIST Economic Impact’를 통해 2020년 UNIST가 울산 지역에 창출한 고용 인원은 2372명이고, 1조6815억 원의 경제유발효과를 냈다고 분석한 바 있다. ‘UNIST Economic Impact’는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의 경제유발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각 대학의 활동성과에 대해 경제적 영향을 분석해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UNIST와 울산과의 관계는 ‘대학 성장-지역발전’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첫 예라는 평가가 많다.
―UNIST가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정부와 지자체의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
“정부에 5년 안에 UNIST가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얘기해도 추가 지원이 없습니다. 800만 인구가 있는 부울경에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 1∼2개는 있어야 지역발전이 가능합니다. 동남권 산업이 발전하려면 수도권의 힘을 뺏을 수 있어야 하는데 UNIST가 세계적인 수준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표와 정부와 지자체의 목표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연구중심대학을 기반으로 세계 최강대국 반열에 오른 독일의 엘리트 대학 육성 프로그램인 ‘엑설런트 이니셔티브’(10여 개의 대학에 매년 200억 원 규모의 블록 펀딩을 지원하고 7년마다 새롭게 심사)를 적용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은 어떻게 하십니까.
“교수, 교직원들과 활발히 소통합니다. 모든 현안을 다 설명합니다.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잘된 것은 잘됐다고 말합니다. 신사업을 유치할 때도 제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합니다. 구성원들은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직원 50여 명과 대화를 했는데 즐겁게 듣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보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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