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프락치 강요 사건’ 진실규명…“국가가 사과·보상하라”

  • 뉴시스
  • 입력 2022년 11월 23일 14시 06분


군사 정권 시절 학생들을 불법 징집하고 이념을 바꿔 프락치 활동에 투입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판단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사과하고 경제적·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23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개최된 제45차 전체위원회에서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은 전직 대통령인 고(故) 박정희, 전두환씨 집권 시절 정권을 비판하는 학생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을 강제 징집하고 그들의 이념을 바꿔 일명 프락치로 활용한 대공 활동이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71년부터 1987년까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시위 전력이 있는 학생이나 사찰 대상자들을 체포·구금한 뒤 제적·휴학 처리하고 강제 입영 조치해 사회와 격리했다.

이후 프락치 활동에 투입된 학생들은 전두환 찬양서적을 읽고 반성문과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강요받았다. 아울러 소속 대학에서 교내 서클이나 연계조직의 동향을 파악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진실화해위는 해당 사건에 대해 2020년 12월13일 최초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이어 지난해 5월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으며, 신청이 접수된 225명 중 이번 1차 진실규명 결정 대상은 187명이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신청 접수 마감 기한인 12월9일까지 추가 신청을 받은 뒤, 1차 진실규명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추가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과정에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개인별 존안자료 2417건을 확보하고 조사했다. 여기에는 윤영찬, 기동민 등 현역 국회의원과 박래군, 유시민, 이강택 등 저명 인사들의 존안자료도 포함돼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20년 간 4차례 대규모 강제징집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1971년, 1975년, 1980년, 5공화국 정권시기 등 총 4차례의 대규모 강제징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희 정권은 학생운동 탄압을 위해 1971년 10월 대학에 위수령을 내려 1800여명의 학생을 연행하고 160여명을 제적 처리했다. 이후 1974년까지 제적 학생 30여명을 포함한 다수의 학생이 강제 입영됐다.

전두환 정은 1980년 9월 계엄포고령 위반자 등 64명을 징집했다. 5공화국 정권 시기인 1981년 4월에는 국방부 장관에게 “소요 관련 학생들은 전방 부대에 입영 조치토록 하라”고 지시했으며, 연령 및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연행된 학생들을 강제 징집해 최전방에 배치했다.

◇6번째 조사…늘어난 피해자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공작 사건’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6번째다. 1984년 제11대 국회 임시회에서 처음으로 관련 질의가 나왔지만, 이듬해 열린 ‘5공 특위 청문회’에서 국방부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후 2004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2010년 1기 진실화해위 등에서 사건과 관련해 조사에 나선 바 있다. 다만 개인별 피해 사례를 인정하고 진실규명한 것은 이번이 사건 발생 이후 51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 조사로 진실화해위는 녹화 및 선도 공작 관련자가 2921명이라는 명단을 확인했다. 앞선 조사들에서는 1980~1984년 강제징집 피해자 1152명 및 녹화 공작 사업 피해자 1192명을 확인하는 데 그친 바 있다.

또 프락치 강요 공작의 경우 전두환 정권 당시 ‘녹화공작’으로 추진됐지만, 이후 ‘선도업무’라는 명칭으로 바뀐 채 1987년까지 지속됐단 사실을 파악했다. 특히 선도 대상자 명단에서 1989년 10월 입대자가 확인되면서, 프락치 강요 공작이 노태우 정권 시기인 1990년까지 이어졌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국가 사과·피해 구제’ 권고

진실화해위는 “1971년 당시 위수령, 긴급조치 제9호 등 그 자체로 위헌·위법인 명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학적을 바꿔 강제 징집한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진실화해위는 ▲국방부 방침과 병무청 지침으로 병역법과 병무행정시행세칙에서 정한 규정과 절차를 위반한 채 강제징집한 점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폭행한 점 ▲보안사령부가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민주화 운동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점 또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봤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의 사과 및 피해 구제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강제징집 피해자들은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당한 후 다시 사회와 격리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욱부, 병무청은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경제적·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조사 활동 종료 후에도 장기적으로 개인별 피해 사실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 회복을 실현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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