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9일 ‘일가족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받고 수색을 벌이던 경찰은 전남 담양군 담양교 인근에서 한 차량을 발견했다.
이 차량 뒷자석에는 어머니 A씨(45·여)가 무의식 상태로 있었고,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A씨의 친딸인 B씨(25·여)와 C양(17)이 숨져 있었다.
투자 사기를 당해 고소장을 내러 경찰서에 간다던 일가족이었다.
이 장소는 평소 이들 모녀가 자주 놀러다니던 곳이었다. 차량에는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숨진 두 딸의 몸에는 흉기에 찔린 외상이 남아 있었고, 다량 출혈로 숨지기 직전이던 어머니 A씨는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여러 범죄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가던 경찰은 병원에서 깨어난 A씨로부터 사건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A씨는 “투자 사기를 당해 더 이상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광주의 자택에서 남편의 옷가지와 흉기를 챙겨 나온 A씨는 오전 2시12분쯤 주행 중이던 차량 안에서 둘째 딸을 살해했다.
어머니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로 한 첫째 딸은 운전을 하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동생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10분 뒤 주차를 한 첫째 딸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어머니에 의해 숨을 거뒀다.
생때같은 두딸을 살해한 어머니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죽음을 기다렸으나 실종 신고를 받고 수색을 하던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이었다.
이들 모녀의 비극은 수억원대 사기를 당한 A씨의 절망감이 발단이었다.
A씨는 지난 2월말쯤 무려 20년간 알고 지내던 지인 박모씨(51)로부터 4억원 상당의 투자 사기를 당했다.
박씨는 A씨를 포함한 지인들을 “경매 직전인 건물을 매입해 되파는 방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다. 돈을 빌려주면 은행 이자보다 높은 돈을 주겠다”고 속여 150억원을 가로챘다.
조사결과 박씨는 빼돌린 돈을 생활비로 사용하거나 다른 피해자를 속이기 위한 ‘돌려막기 이자’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한 A씨는 자녀를 살해한 혐의(살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광주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혜선)은 지난 18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돼 전재산을 잃어버렸다는 극심한 상실감과 우울감으로 인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던 딸들을 더 이상 책임지기 어렵다는 절망감에 이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성인에 가까운 피해자들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나갈 기회를 박탈당한 채 생을 마감토록 한 행동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둘째 딸은 첫째 딸과 달리 범행 당시에서야 A씨의 계획에 대해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죽기 싫다는 취지의 분명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범행의 죄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특히 “다만 첫째 딸은 범행 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로 했고 둘째 딸 역시 결국은 어머니의 계획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등 부모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의 유족이 A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피고의 친척과 지인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가족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점 등 모든 양형조건을 종합해 양형기준의 상한을 다소 초과한 형을 내린다”고 판결했다.
한편 광주지법 형사12부(재판장 김혜선)은 최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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