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조심합시다’ 방송 2초만에…헬기 수직으로 추락”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7일 22시 00분


주민 제공
주민 제공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27일 산불 예방 홍보 활동을 하던 헬기가 추락해 5명이 숨진 강원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야산. 사고를 목격한 인근 주민 김모 씨(57)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헬기에서) ‘산불을 조심합시다’라는 방송 소리가 난 지 불과 2~3초 만에 헬기가 수직으로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는 헬기 프로펠러와 날개 등이 박살난 채 나뒹굴고 있었고 동체는 완전히 타버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소방관이 잔불을 확인하기 위해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자 무릎 높이까지 연기가 올라왔고, 사방에 탄내가 진동했다. 추락 장소 인근 야산 100㎡ 가량도 완전히 불에 탄 상태였다.

● 반복되는 노후 헬기 사고
양양=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양양=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속초시에 따르면 1975년 2월에 제작된 이 헬기는 올 1월 전북의 한 민간항공기 업체가 항공당국에 등록했다. 속초 양양 고성 등 3곳은 10억6897만 원을 내고 다음 달 30일까지 산불 대응을 위해 임차했다. 좌석은 18개다. 속초시 관계자는 “시속 204㎞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대형 헬기처럼 20분 이상의 엔진 가열이 필요하지 않아 산불 발생 시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다”고 임차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은 이 헬기가 노후 기종인 만큼 정비 불량에 따른 기체 결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임차 헬기 추락사고는 이번 사고를 포함해 총 7건으로 모두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조사가 마무리된 3건의 추락사고 가운데 2건은 기체 결함이 원인이었다.

원칙적으로 헬기 기령(기체 사용 연수)이 50년을 넘어도 관련 법령에 따라 정기적으로 정비를 받고 관련 검사를 통과하면 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헬기 전문가들은 “기령이 높을수록 성능이 떨어지고 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연철 한서대 헬리콥터조종학과 교수는 “기령이 높으면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리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결함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사고헬기의 경우 예전 기종이다보니 블랙박스도 없어 사고 원인을 밝히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각 지자체가 빌린 헬기 상당수가 노후 기종이어서 비슷한 사고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10개 시도가 민간업체로부터 임차해 사용 중인 헬기는 총 72대였는데 기령 40년 이상된 헬기가 40%에 달했다. 올 5월에도 경남 거제에서 헬기가 추락해 기장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사고 헬기는 53년 된 기종이었다.

● 탑승자 관리도 허점
양양=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양양=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날 사고로 항공당국의 헬기 탑승자 관리에도 허점이 드러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장 A 씨는 이날 오전 8시 51분경 양양공항출장소에 휴대전화로 이륙을 신고했는데, 자신을 포함해 2명이 오전 9시 반부터 산불 계도 비행을 할 거란 내용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계류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해 5명이 탑승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A 씨가 같이 탑승했다가 사망한 3명을 신고하지 않은 것은 승객 전원을 비행계획서에 적시하도록 한 항공안전법을 위반한 것이다.

다만 항공당국에 따르면 헬기 기장이 운항에 앞서 제출하는 비행계획서는 문서가 아닌 전화로 통보할 수 있고, 허가나 승인이라기보다는 신고 개념이라고 한다. A 씨처럼 탑승자 신고를 허위로 하는 것이 관행처럼 퍼져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항공당국 관계자는 “비행계획이 잘못 제출된 경위에 대해선 조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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