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파업]
12개 항만 반출입, 평시의 7.6%… 유조차 파업에 주유대란 현실화
레미콘 생산 내일부터 중단, 전국 259개 건설현장 셧다운 위기
주말인 26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주유소에 대기 차량이 길게 늘어섰다. 주유기 3대 중 1대가 재고 소진으로 작동을 멈춘 탓에 병목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주유소는 지하 탱크 5개에 기름을 저장하는데 해당 주유기와 연결된 탱크의 기름이 바닥났다고 한다. 직원 A 씨는 “원래 어제 기름을 받아야 했지만 유조차가 안 왔다”며 “사흘에 한 번 탱크를 채워야 한다. 이대로라면 늦어도 월요일(28일) 아침에 다른 탱크도 바닥날 것 같다”고 했다.
인근의 또 다른 주유소도 “원래는 매일 유조차가 기름을 채워 준다. 지금 재고가 30%밖에 안 남아서 월요일 새벽까지 안 들어오면 주유기 5대 중 3대는 꺼야 한다”고 말했다.
○ 일부 주유소 “재고 바닥”… 서울 수도권 우려 커
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간 지 나흘째에 접어들며 곳곳에서 ‘연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부 주유소에서 재고 소진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평균 보름 치 물량을 확보해 놓고 있다. 다만 주유소마다 탱크 용량이 제각각이어서 2, 3일에 한 번씩 재고를 채워야 하는 업체들의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주요 정유회사들은 유조차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수송업체에 운송을 맡기다 보니 총파업에 속수무책이다.
업계는 이번 파업이 올 6월 파업보다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당시에는 탱크로리(유조차) 기사들의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70%를 넘었다. 특히 노조 가입률이 90%에 달하는 서울, 인천, 경기 일대 주유소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이날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부터 재고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탱크로리를 우선 배차하는 등 파업의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 수출입 화물 선적 주요 항만은 ‘올 스톱’
주요 항만은 사실상 ‘올 스톱’됐다. 27일 오후 전남 광양시 광양항 허치슨컨테이너터미널 입구는 적막한 모습이었다. 해양수산부 광양항비상대책본부 관계자는 “파업이 시작된 24일부터 오늘까지 광양항을 진출입하는 대형 화물차량은 단 한 대도 없었다”고 전했다.
광양의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화물연대가 광양 시내 25곳 등 주요 길목에 텐트를 치고 (비조합원 차량 운행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비조합원들은 무리하게 화물 운송에 나섰다가 차량 파손 등 봉변을 당할 것을 우려해 운송을 아예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는 광양을 비롯해 여수, 영암, 순천, 목포, 곡성, 나주, 장성 등 전남 9개 시군에 51개 텐트를 설치하고 파업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살얼음판 분위기다. 여수국가산업단지 입주 업체 관계자는 “일부 화학제품 등 긴급물량 반출만 허용하고 있다”며 “긴급물량 반출이 허용되지 않으면 공장이 바로 멈추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12개 항만에서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의 7.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광양항과 평택·당진항, 울산항 등 일부 항만은 컨테이너 반출입이 거의 없어 사실상 항만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 29일부터 레미콘 생산 중단… 건설현장 셧다운 임박
시멘트 출하량도 급감했다. 임시방편으로 철도와 선박으로 운송하지만 생산 공장과 유통 기지가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 8곳이 시공 중인 전국 현장 459곳 중 259곳(56%)의 레미콘 타설 공정이 이달 25일부터 중단됐다. 시멘트 출고량이 평시 대비 20%에 그치며 레미콘 품귀가 빚어진 데 따른 것이다.
레미콘 업체들은 제품 특성상 재고 보관량이 2, 3일 치에 불과해 당장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미콘 업계는 29일부터 전국적으로 생산이 중단돼 전국 대부분 건설 현장의 공사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물량 부족으로 품질이 떨어진 레미콘을 써서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업계는 생산이 완료된 차량을 탁송하지 못해 완성차 업체 직원들이 직접 몰고 배달에 나섰다. 한국타이어 대전과 충남 금산 공장은 하루 3만∼5만 개를 생산해 오던 해외 수출 출하량을 파업 이후 기존 대비 30∼40%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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