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한파’로 위기 가구가 빠르게 늘고 어려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복지 사각지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요구된다.
26일 인천 당하동에 있는 한 빌라에서 10대 형제 2명이 숨지고 부모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외부 침입흔적이나 외상 등은 없었고 극단적 선택을 의심할 만한 흔적과 유서로 추정되는 자필 메모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화장해 바다에 뿌려달라는 취지의 내용이 적힌 것으로 확인됐다.
40대 부모는 직업이 없고 빚이 있어 평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부모는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다.
일가족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들이 다니던 학교 교사가 방문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경찰에 따르면 형 A군이 등교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교사가 집으로 찾아갔다가 사고현장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 A군 보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은 취학 연령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3일에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고를 겪던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에는 전기 요금과 월세 등이 5개월 이상 밀렸다는 등의 이유로 집주인이 퇴거를 요청하는 편지가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료는 14개월째 미납 상태였고 통신비 연체와 금융 연체도 수개월 지속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돼 있었지만 광진구에서 신촌으로 이사온 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관할 구청의 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신촌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날인 24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8월 희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당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이와 같은 사건은 잇따르고 사회 곳곳에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한 모습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7월) 선정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는 52만3900명이지만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는 사람은 2.9%에 불과하다. 복지망의 한계로 모든 가구가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나경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학과장은 “대상자가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관계기관에서 대상자와 접촉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있다. 또 시스템상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이 이뤄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시스템이 역할이 잘 수행되기 위해서는 민관의 협력이 중요하다. 지역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각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위기가구 발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위기가구 발굴의 정확도를 높이고 실질적으로 지원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행정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관련 제도를 안내하고 대상자를 기관에 연계하려면 담당 공무원이나 명예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같은 발굴 인력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부산지역의 한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복지 사각지대)대상자 집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관리하기에는 인력이 한계가 있어 전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촘촘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담당자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자리 지원이나 관련 상담 시스템을 더 활성화시켜 위기가구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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