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학동초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만난 5학년 한세영 양(11)은 이같이 말했다. 이 학교는 사방이 모두 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좁은 이면도로다. 정문 앞 도로 한쪽에 보행전용 공간임을 나타내 주는 노란 실선이 보였다. 하지만 차단봉이나 연석, 펜스 등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이었다. 한 양은 “보행전용 공간 표시선이 있지만 잘 안 지켜진다. 일방통행인데 역주행하는 오토바이까지 많아 무섭다”고 했다.
2일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교 학생이 학교 앞 이면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서울의 상당수 초교 주변 이면도로가 언북초 앞처럼 보행 공간이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면도로 보행로 구분 안 돼 위험
올 초 서울시는 ‘2022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을 내놓고 초등학교·유치원 등 36곳의 주변 이면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30km에서 20km로 낮추고, 스쿨존 표시가 운전자의 눈에 띄도록 도로를 포장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36곳 중 구로구 오류초, 강남구 청담초 언주초 언북초 등 5곳을 돌아보고 나머지를 포털 거리뷰 등으로 살펴본 결과 학교 담장과 인접한 이면도로에서 차단봉 등의 구조물로 인도와 차도가 모두 분리된 곳은 13곳(36.1%)뿐이었다.
오류초 앞 이면도로 역시 차단봉 등으로 구분된 보행전용 도로가 없었다. 이곳은 2019년 5월 12세 남아가 자동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던 곳이다. 오류초 앞에서 만난 초3, 초4 세 자녀의 학부모 김세희 씨(39)는 차가 갑자기 뛰쳐나와 학생들이 놀라 넘어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안 돼 있어 항상 불안하다”며 “길이 좁아 인도를 따로 만들기 어렵다면 연석 등으로 차가 침범하면 안 되는 보행전용 공간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2일 사망 사고가 발생한 언북초 후문은 이날도 비좁은 차도에 양방향으로 차들이 오갔지만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는 연석이나 차단봉 등은 설치되지 않은 채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가 좁아 차단봉 등 시설물 설치를 위한 간격이 확보되지 않는 곳이 많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 과속방지턱, 카메라 없어 속도 제한 무용지물
서울시는 안전한 스쿨존을 만들겠다며 일부 학교 앞 이면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20km로 낮췄다. 하지만 이 역시 과속 단속장비나 과속방지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무용지물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날 오후 취재팀은 제한속도가 시속 20km인 학동초교 앞 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학생이 골목길을 빠르게 달려오던 차량에 치일 뻔한 장면을 목격했다. 다행히 학교 보안관이 학생을 멈춰 세워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 스쿨존에는 과속단속장비가 없었고, 과속방지턱은 도로 위로 솟아오르지 않은 채 색깔만 칠해져 있었다. 이 학교 6학년 문진우 군(12)은 “공사트럭들이 달려올 때면 정말 무섭다. 학교 앞에선 제발 차들이 속도를 줄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쿨존에서는 과속방지턱의 높이와 간격을 규정에 맞게 설치하거나 도로 노면을 울퉁불퉁하게 하는 요철포장을 설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