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염산, 황산처럼 유출 시 인체에 즉각적으로 피해를 주는 화학물질과 납, 벤젠처럼 당장 영향은 크지 않아도 서서히 인체에 영향을 주는 화학물질에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된다. 환경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유독물질 지정관리 체계 개편안을 8일 열린 제12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보고했다.
이번 개편안은 지난 8월 환경부가 발표한 환경규제 혁신방안에서 화학물질별 유해성 차등규제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화학물질 가운데 유독물질로 등록돼 규제를 받는 화학물질은 총 1093종이다. 2014년 722종보다 50% 증가했다. 2015년 화학물질 등록·평가법이 시행되면서 새로 제조·수입되는 화학물질 뿐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던 화학물질도 모두 등록을 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또 유해성을 모두 재평가 받게 되면서 정부가 지정해 관리하는 유독물질이 급증하게 됐다.
관리해야 할 화학물질이 많아졌지만 이들을 모두 유독물질로 일괄 관리하면서 불필요한 규제가 발생하거나 반대로 물질에 맞는 맞춤 규제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환경부가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벤젠의 경우 인체에 곧장 큰 손상을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고 장기간 노출 시 유해한 물질이라 유독물질로 지정돼있다. 그런데 벤젠을 취급하는 업체는 황산 등을 취급하는 업체와 마찬가지로 유출사고가 터졌을 때 급성위험에 대비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유출을 막는 설비도 설치해야 한다. 장기간 노출돼야 유해한 물질에 이런 설비는 과하다는 것이 그동안 업체 관계자들의 불만이었다.
반면 염산, 황산과 같이 곧장 해를 끼치는 물질들은 그에 맞는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벤젠과 같은 다른 유독물질 업체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쉽게 강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에 환경부는 앞으로 유독물질을 ‘급성유해성물질’, ‘만성유해성물질’, ‘생태유해성물질’ 이렇게 3가지로 분류해 관리하기로 했다. 염산, 황산은 급성유해성물질, 벤젠, 납은 만성유해성물질에 포함된다. 생태유해성 물질에는 수생생물에 피해를 주는 산화구리 등이 들어간다.
급성유해성물질에는 ‘한 번만 노출돼도 건강에 중대한 독성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성’을 뜻하는 ‘특정표적장기독성’ 물질도 포함하도록 해 규제를 강화했다. 오래 노출됐을 때 인체에 악영향을 주는 만성유해성물질은 노출시간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생태유해성물질에 대해서는 생태계 유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의 규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만성유해성물질 관련해서는 관리 이행안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유독물질 지정관리 체계 개편안에는 화학물질을 매우 적은 양만 취급하는 사업장의 경우 화학물질관리법상 영업허가·신고를 면제하고 ‘자율관리’하는 방안도 담겼다. 취급하는 화학물질 유해성이나 취급량에 따라 시설 정기검사 주기를 1년부터 4년까지 달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완벽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급성, 만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문제는 남는다. 극소량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영세사업장의 경우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건일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은 “현재도 신규 화학물질뿐 아니라 기존 화학물질을 (제조·수입 시) 등록하도록 하고 유해성을 평가하는 절차가 있다”며 “아직 등록이 안 된 물질은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 검증자료를 활용하는 등 화학물질 유해성을 지속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새로운 개편안을 반영한 화학물질 등록·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을 내년 8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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