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발견 비율 30∼90%, 모낭충 유전자 조각은 100% 발견
모유 수유하며 자녀에게 전달돼… 사람 몸과 함께 사는 유일한 동물
출신국가에 따라 다른 모낭충 가져…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과 일치
다리가 8개이고 반투명 피부에 주름이 가득한 모낭충. 우리 몸에 사는 모낭충은 맨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을 뿐만 아니라 피부 속에 꽁꽁 숨어 있어서 찾기 힘들 거야. 그래도 잊지 마, 보이지 않아도 모두에게 있다는 걸!
○ 사람의 모낭 속에 사는 진드기
“모낭충 수확하러 왔습니다∼!”
올 7월 18일, 기자는 사무실을 돌며 편집부 10명 전원의 얼굴에 투명한 테이프를 붙였어요. 연세대 환경의생물학교실의 용태순 교수가 ‘운이 좋으면’ 테이프에 모낭충이 달라붙을 거라 설명해 직접 확인하려 했지요. 모낭충은 진드기에 속하는 동물로, 학술적으로는 ‘모낭진드기’라 부르는 게 정확하지만 흔히 ‘모낭충’이라고 불러요. 약 40분 동안 편집부 사람들의 얼굴에 붙여 놨던 테이프를 용 교수팀에 전달해 현미경으로 살펴봤어요. 그러나 모낭충을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죠.
용 교수는 “수업에서 같은 방법을 시도하면 학생 100여 명 중 2, 3명에게서 모낭충이 발견된다”고 말했어요. 이처럼 모낭충이 잘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모낭충이 모낭 속에 꼭꼭 숨어서 나오기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모낭’은 우리 몸의 모든 털이 자라는 주머니예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낭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어요. 연구에 따라 모낭충 발견 비율이 30∼90%로 다양해요. 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모낭충이 없다고 볼 수는 없어요. 결국 2014년 미국 연구팀이 모낭충이 산다면 얼굴에서 발견될 모낭충의 유전자 조각인 ‘18S rRNA’를 찾기로 했어요.
그 결과 20세 이상 미국인 29명 중에서 실제 모낭충이 발견된 건 14%에 불과했지만, 유전자 조각이 발견된 건 100%였어요. 모낭충이 사실 거의 모든 사람의 피부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모낭충은 얼굴과 귀, 유두, 생식기 등 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살면서 피지를 먹어요. 모낭충이 우리 몸에 질환을 일으키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어요. 용 교수는 “우리 몸에 있는 세균이 해로운 세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주는 것처럼, 모낭충도 어떤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답니다.
○ 엄마에게서 물려받는 모낭충
올 6월 21일 영국 레딩대 알레한드라 페로티 교수 팀이 모낭충 유전체를 최초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어요. 블랙헤드 제거제로 얻은 총 250마리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은 주로 엄마에게서 모낭충을 전달받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배우자나 아빠보다 엄마와 자녀의 모낭충 사이에 유전체 유사성이 훨씬 높았어요. 교수 팀은 논문에서 “모유 수유를 할 때 어머니의 모낭충이 자녀에게 쉽게 전달된다”고 했어요.
모낭충 외에도 선충류 등 다양한 기생 생물이 모유 수유 과정에서 전달돼요. 사람의 피부에는 모낭충이 도망쳐야 할 천적도, 먹이를 경쟁해야 할 생물도 없어요. 이런 탓에 페로티 교수는 “엄마에게서 전달받은 극소량의 모낭충은 숙주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근친교배를 한다”고 설명했어요. 그 결과, 모낭충은 매우 단순한 생물이 됐어요. 새로운 모낭충을 만날 일이 없으니 새로운 유전자를 얻을 가능성이 적고, 모낭 속에서 평화롭게 기생하며 원래 갖고 있던 능력까지 퇴화시켜 버렸기 때문이지요. 결국 단백질을 만들며 기능을 하는 유전자 수가 지금까지 확인된 절지동물 중 가장 적은 것으로 밝혀졌어요.
용 교수는 “많은 기생충이 먹이 섭취와 생식 능력만 발달하고 다른 기능들을 잃어버리곤 한다”며 “사는 데 필요한 것을 모두 숙주에게서 얻기 때문”이라고 말했지요. 페로티 교수는 “모낭충은 이제 더 이상 숙주인 사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필수 공생충’이 되어가고 있다”고 강조했어요. 이어서 “우리 피부는 다양한 유기체로 덮여 있으며 모낭충은 우리 모공을 청소하며 우리 몸과 함께 사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말했답니다.
○ 300만 년 전부터 인류와 동거
2015년 인간의 모낭충에게서 인간 조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어요. 미국 보든대 생물학과 마이클 팔로폴리 교수가 속한 공동연구팀이 참가자 70명에게서 얻은 모낭충 241마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지요. 미토콘드리아는 진핵생물의 세포 안에서 세포 호흡을 담당하는 소기관으로,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달돼 생물의 진화적 관계를 밝히는 데 쓰여요.
연구팀은 일부 참여자의 이마를 헤어핀의 휘어진 부분으로, 나머지 참여자는 볼과 코를 작은 국자 모양의 금속 숟가락으로 긁어서 털과 모낭충을 채취했어요. 그리고 유전자 분석 결과에 따라 각 모낭충의 혈통을 나누고 이를 참가자 조상의 출신 국가와 비교했지요. 참가자들은 대부분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유럽에 살았던 조상의 후손들이었어요.
그 결과 모낭충 역시 4개의 혈통으로 나뉘었어요. 수 세대 동안 미국에 살았더라도 아시아계 미국인은 아시아계 모낭충을,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프리카계 모낭충을 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요.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도 마찬가지였고요. 다만 유럽계 미국인이 주로 지닌 유럽계 모낭충은 다른 참가자들에게서도 발견됐어요. 이는 19세기 유럽 열강이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 식민지화한 역사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돼요.
나아가 연구팀은 인간의 모낭충이 나타난 게 약 240만∼380만 년 전이라고 추정했어요. 이는 인류가 속한 ‘사람속’이 등장하던 무렵이지요. 또 모낭충의 4가지 혈통 중 아프리카와 아시아 혈통이 가장 오래전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됐어요. 이는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해 아시아로 이동한 뒤 전 세계로 퍼졌다는 아프리카 기원설과 일치해요.
연구에 참여한 미국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의 미셸 트라우트웨인 연구원은 “모낭충은 현생인류의 여행에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모낭충은 그냥 벌레가 아니라 인류의 고대사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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