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지면의 ‘고양이 눈’ 애독자시라면 눈치 채셨겠지만, 게재된 사진들 상당수는 골목에서 찍힌 것들입니다. 골목만큼 아기자기하면서도 다채로운 공간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숨결과 흔적이 늘 느껴지는 공간이죠. 그만큼 사진 소재도 많기 때문에 ‘고양이 눈’ 취재를 위해 저희는 골목길을 많이 걸어 다닙니다.
▽물론 요즘 골목엔 예전의 정취가 없다는 푸념도 많이 들립니다. 시대가 변하듯 골목도 변했죠. 요즘 골목이 옛날 골목같이 안 느껴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차도 많이 다니는데다 주차장처럼 됐기 때문이죠. 주차구역 선이 그려지며 ‘골목다움’을 잃었습니다. 좁아요. 어렸을 때 골목길은 광장 같이 느껴졌습니다. 몸집이 작은 어릴 때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주차된 차들이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방범·주차 위반 CCTV 등도 곳곳에 있어 더 삭막하게 느껴집니다. 그 덕분에 범죄가 줄었지만요. 골목이 오직 이동만을 위한, 지나치는 공간이 된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골목은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임에는 분명합니다.
▽옛날 골목은 교류와 소통, 놀이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웃주민들이 만나 대화를 하고 음식을 나눴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갖은 놀이를 즐겼습니다. 집이 확장된 구역이었죠. 마당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골목엔 하늘이 있었습니다. 비와 눈도 맞고요. 도시였어도 자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골목이 생활의 콤플렉스(복합) 공간이었던 것 같아요.
이 역할을 지금은 도시계획에 의해 나뉜 구역이 대체합니다. 이웃간의 교류는 동네 카페(상업구역)에서 하고요, 아이들은 놀이터에 모여 놉니다. 놀이터 옆엔 동네 경로당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을 느끼려면 곳곳에 조성된 공원 녹지를 찾으면 됩니다.
도심 재개발이 끝나면 피맛골이 사라지고 아케이드로 바뀌어 있죠. 시장도 캐노피를 덮어 날씨를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요즘 ‘*리단길’ 같은 이른바 ‘핫플레이스’들은 여전히 골목의 몫이지만 지자체가 의도적으로 기획·개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자연 발생적인 골목에 대한 아쉬움도 남습니다.
▽‘복합 공간’으로서의 골목을 현대도시에선 복도가 대신합니다. 새로 짓는 건물들은 복도가 널찍널찍합니다. 대형 쇼핑몰의 복도는 광장급이죠. 지붕을 투명하게 설계해 햇볕도 들어오게 합니다. 피맛골 자리를 대체한 아케이드도 복도로 봐야 합니다. 복도 양쪽엔 가게들이 나열돼 구경거리를 제공합니다.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큰 아파트 단지엔 상가 건물이 있기 마련이고, 그 안에도 제법 넓은 복도가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골목의 역할은 상가 건물의 복도가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대형 건물에 개방된 복도, 즉 골목이나 광장 느낌을 주는 첫 건물로 보험회사 로이드의 영국 런던 본사 빌딩을 꼽습니다. 1978년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했는데요, 중정(中庭) 역할을 하는 건물 가운데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복도 한 편에서 맞은 편 복도를 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구조지요. 요즘엔 국내 대기업 본사나 쇼핑몰도 이런 형태로 많이 설계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대형빌딩들이 복도를 이용해 옛날의 개방된 골목길을 재현하려는 이유는 교류와 소통 때문입니다. 복도가 이동만 하는 공간이라면 재미가 없죠. 다른 회사나 다른 부서 사람들을 조우하게 만드려는 의도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성과가 뛰어난 연구원들의 업무 패턴을 분석했는데,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무실 밖에서 연구와는 관련 없는 직원들을 만나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구내식당, 탕비실, 복도, 엘리베이터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를 즐긴다는 겁니다. 가장 실적이 좋은 연구원은 환경미화원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며 근무시간에 ‘쓸 데 없는’ 잡담을 많이 했음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이질적인 것들과 교류할 때 ‘스파크(불꽃)’ 이 튄다고 하죠.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즐겁고 신나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접촉하며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봐야 시야가 넓어지겠죠. 요즘 공유 오피스의 로비는 매우 수다스런 공간이라고 하는데 맞는지요?
‘복도’가 대신하고 있는 현대의 골목도 ‘익명의 자유’를 넘어 사람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얽히고설키며 융합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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