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대체복무제는 지나치게 복무 기간이 길고 가혹해 헌법재판소 판단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징벌적 대체복무제를 거부하는 것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합니다.”
8일 광주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황혜민)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대체역 소집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A 씨 측은 이 같이 주장했다. 과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졌으나 2020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A 씨는 이후 대체복무마저 거부해 기소된 국내 첫 사례다.
이날 A 씨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40여분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현행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을 띠기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A 씨가 대체복무를 거부한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 때와 같이 종교적 사유 때문이 아니라 현행 대체복무제가 부당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현행 대체복무제는 병역 거부에 대한 징벌”
현행 대체복무제는 2018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방안을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도입됐다. 현행 대체복무제는 대체복무요원들이 육군 현역병(18개월)의 2배인 36개월 동안 구치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복무하는 형태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기구들은 대체복무 기간이 군 복무의 1.5배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8일 A 씨 측은 현행 대체복무제가 대체복무자를 현역 군 복무의 2배에 해당하는 기간 교도소에 수용해 대체복무자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사회에서 격리하는 “사실상 감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역병의 1~1.5배의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출퇴근 근무를 하는 아르메니아나 핀란드 등 해외의 사례에 비춰 가혹하고, 21개월간 다양한 기관에서 복무하며 출퇴근 생활을 하는 사회복무요원 등 국내 사례와 비교해도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날 A 씨 측은 “일과 시간 중 전자기기 사용이 허락되지 않아 아내와 자녀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근무 후에도 교도소 내부의 생활관에서 가택연금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등 현재 복무 중인 대체복무자들의 진술도 소개했다. 특히 2018년 대법원에서 국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체복무 중인 오모 씨는 “복무를 하면서 대체복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저를 사실상 처벌하는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헌재는 “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이를 선택하게 어렵게 만드는 것은 대체복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거나 징벌로 기능하게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했다. A 씨 측은 “현행 대체복무제는 복무 기간 등이 과도해 이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8년 현행 대체역법 발의 당시 정부는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병의 1.5배인 27개월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병역기피 수단 악용 우려와 부정적 여론 등을 들어 36개월로 정했다. 이날 A 씨 측은 국회의 대체역법 법률안 심사 과정에서 “꼭 합숙을 해서 고통을 주자” “징벌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등의 의원 발언이 다수 나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애초 제도 설계 과정에서부터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을 띠도록 의도됐다는 취지다.
● “현행 대체복무제 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초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해석이었다. 병역법 88조 1항은 입영 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 씨 측은 “현재의 징벌적인 대체복무제는 위헌이고 현행 대체복무를 거부하는 것도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올 7월 A 씨가 국내 최초로 대체복무 거부를 이유로 기소된 이후 대체복무의 징벌성을 이유로 대체복무를 거부하는 사례가 뒤따르면서 이 사건 재판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날 법정에서는 과거 아르메니아의 대체복무와 관련한 유럽인권재판소 사건 변호인이었던 안드레 카보노 변호사 등 국내외 인권 전문가들이 재판을 방청했다. 내년 2월 2일 열리는 다음 공판에는 오 씨 등 현재 대체복무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현행 대체복무제의 징벌성 등에 관해 진술할 예정이다.
A 씨 측 변호인인 김진우 변호사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징벌적인 현행 대체복무제는 설계 당시부터 이를 거부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것이 실제 현실이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많은 대체복무자들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사회에 기여하길 원하면서도 현행 대체복무제는 처벌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며 “현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앞으로도 A 씨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 발생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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