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의견 반영” 추천 취지와 달리
“대법원장 영향력 더 커져” 지적
법관회의서도 “수석판사 유리” 우려
내달 21개 지법중 14곳 법원장 교체
내년 1월 임명될 새 법원장 후보를 추천한 전국 지방법원 12곳 중 10곳에서 현직 수석부장판사가 최종 후보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수석부장판사들이 대거 최종후보 명단에 오른 걸 두고, 민주적 절차로 법원장 후보를 추천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법원 10곳, 수석부장이 법원장 후보로
1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지방법원 21곳 중 임기가 남은 곳을 제외하고 내년 1월 법원장이 새로 임명되는 곳은 14곳이다. 14개 법원 모두 법원장 후보추천제가 시행되는데 이 중 후보 수 미달로 투표가 이뤄지지 않은 울산지법과 제주지법을 제외한 12곳이 법원장 후보를 대법원에 추천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서울가정법원 등 10곳에선 현직 수석부장판사가 최종 후보 2∼4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김정중 민사2수석부장판사(사법연수원 26기)와 반정우 부장판사(연수원 23기)가 후보로 추천됐다. 서울남부지법원장 후보로는 황정수 수석부장판사(연수원 28기)와 임해지 부장판사(연수원 28기), 정계선 부장판사(연수원 27기)가 이름을 올렸다. 황 수석부장판사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담당했다.
○ “수석부장이 다른 후보보다 유리”
법원장 후보추천제는 2019년 처음 도입됐는데 도입 당시부터 “법원 사무 분담과 근무평정 등을 담당하며 판사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수석부장판사들이 법원장이 되기 유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후보로 추천되려면 해당 법원 소속 판사 3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최종후보가 되기 위한 전자투표 역시 해당 법원 소속 판사 1인 1표로 진행되는데 아무래도 수석부장의 인지도가 높다 보니 추천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수석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결국 김 대법원장이 지방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직과 관계없이 기수 등을 토대로 대법원장이 법원장을 임명했던 과거보다 오히려 더 자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수석부장판사가 쉽게 법원장으로 가는 건 당초 민주적 절차로 판사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한다는 후보추천제의 취지와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5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수석부장판사가 사실상 법원장 후보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날 회의에선 ‘대법원장이 수석부장판사를 임명하는 구조와 수석부장판사가 다른 후보에 비해 투표에서 유리해 제도가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조치를 취한다’는 안건이 상정됐지만 찬성 43명, 반대 44명, 기권 6명으로 아슬아슬하게 부결됐다.
대법원은 이 같은 우려를 감안해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었으나 자문위 구성 단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자문위는 법원행정처장과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판사 2명,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판사 3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대표회의 측은 “자문위 참여 판사에 대한 투표가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됐다”며 추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장 후보추천제에 반대하는 이들과 후보 개인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투표에 불참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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