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서 초등학생 A 군(12)이 건널목에서 혼자 길을 건너다 직진하던 버스에 치여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인근이었다. 경찰은 버스기사를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앞서 이달 2일에도 강남구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초등학생(9)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두 곳 모두 인근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보행환경 개선을 요구하던 구역이어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등을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 버스기사 “빙판길에 제동 안돼”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사고가 난 곳은 세곡동의 한 아파트단지 앞 삼거리 횡단보도였다. 전날부터 눈이 내려 사고가 난 오전 9시 8분경에는 도로에 눈이 2㎝ 정도 쌓여 있었다고 한다.
사고 버스 운전기사 B 씨는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뛰어오는 아이를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길이 얼어 있어 버스가 바로 멈추지 않고 미끌어졌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B 씨는 A 군이 신호등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B 씨의 과속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법에 따라 초등학교 반경 300m 정도를 스쿨존으로 지정하고 속도는 시속 20㎞ 또는 30㎞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곳은 스쿨존에서 8m 정도 떨어져 있어 시속 50㎞ 적용을 받는 지역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도로에 2㎝ 이상 눈이 쌓여 있으면 제한속도의 50%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버스기사에 대한 1차 조사 결과 음주나 졸음 운전은 아닌 걸로 확인됐다”며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버스 블랙박스와 인근 폐쇄회로(CC)TV 등을 보내 정확한 경위와 과속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주민 “제설작업 해달라”…구청 “우선순위 아냐”
사고 소식을 접한 인근 주민들은 “예견된 사고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사고 장소 주변에는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1곳이 있어 평소에도 학생들이 해당 도로를 통학로로 자주 이용한다. 사고 현장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아파트 주민 김모 씨(31)는 “횡단보도가 오르막길에 있다 보니 앞에서 속도를 높이는 차량이 많다”며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특히 주민들은 눈이 오면 차량이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며 강남구청에 수시로 제설작업을 요청했는데 구청에서는 ‘우선 순위가 아니다’며 제설작업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주장했다.
주민 강모 씨(44)는 “경사가 있다 보니 제설 작업이 제대로 안 되면 아이들이 다니기에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이 올 때마다 우선적으로 (제설 작업을) 해달라고 구청에 이야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 지점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사고 당일에도 도로에 눈이 쌓여 있었고, 염화칼슘 등은 뿌려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강남구청 관계자는 “통행량이 많거나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에 대해 제설 작업을 우선 진행하고 있다. 사고 지점은 제설작업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곳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또 사고가 난 곳이 비보호 좌회전이라며 신호등 설치 등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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