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인 이의신청권 삭제된 ‘검수완박법’ 시행 100일
일부 시민단체, ‘권리구제’ 헌법소원
지적장애인 김영수(가명·50) 씨는 201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형제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어머니가 생전에 김 씨 이름으로 넘겨줬던 아파트와 땅은 형제들에게 모두 넘어갔고, 형제들은 김 씨의 돈을 조카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했다.
김 씨는 장애인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올 8월 병원에서 빠져나왔지만 어머니 유산을 되찾기 위한 형사 고소 절차를 4개월째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장애인 지원 단체에서 김 씨를 대신해 고발 절차를 진행했겠지만 올 9월 10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으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부패 및 경제 사건으로 제한한 검수완박법 시행 100일(18일)이 지나면서 초기부터 논란이 됐던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의 부작용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9월 10일부터 시행된 검수완박법은 범죄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 고발인의 경우 경찰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할 수 없게 했다.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난립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이 때문에 김 씨의 경우 직접 고소하지 않는 이상 경찰 수사에 불복해 이의신청할 수 없게 됐다.
김 씨를 대리하는 활동가는 18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족 사이의 유산 분쟁이기 때문에 경찰이 무혐의로 판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김 씨가 직접 고소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지적장애가 있는 김 씨가 조사에서 일목요연하게 피해를 진술할 수 있을지, 고소 이후 형제로부터 압박을 받지는 않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지적장애인 윤미영(가명·85) 씨도 지난해 10월 자녀로부터 학대를 당했지만 고소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윤 씨의 변호사는 “경찰이 워낙 맡은 사건이 많다 보니 하나하나 잘 들여다볼 거란 확신이 없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면 가급적 윤 씨가 직접 고소해야 할 것 같다”며 “윤 씨의 경우 나이가 많은 데다 지적장애까지 있어 고소인 조사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검수완박법은 통과 당시부터 노인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등 범죄 피해를 당하더라도 직접 고소장을 제출하기 어려운 이들의 권리 구제를 막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다. 국회에는 고발인의 이의신청을 허용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고발인 이의신청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성폭력,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대리하는 한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고발인 이의신청권 폐지 문제만은 반드시 입법 보완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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