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포럼에서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부가가치세율 인상 등 증세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재정 확충 방안으로 현행 9%인 연금 보험료율의 인상, 즉 ‘더 내는’ 방식이 주로 거론됐지만 세금을 ‘더 걷는’ 방식도 새롭게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이 같은 논의는 내년 10월 발표될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부가세율 인상해 연금 재원 마련해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은 21일 연금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전문가 포럼을 열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에 일반조세 수입으로 마련된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가입자가 내는 연금보험료 수입, 기금 운용 수익, 국고보조금 등으로 이뤄져 있다. 올해 9월 말 기준 기금 적립금 수입은 총 62조1890억 원. 이 중 연금보험료 수입은 41조4830억 원, 기금 운용 수익은 20조6990억 원, 국고보조금 등은 70억 원이다. 박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에 대한 세금 지원은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투입해 국가가 국민연금 운영에 책임을 다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의 분석 결과 소득세나 법인세보다는 부가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근로 의욕이 떨어져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 법인세 또한 현재 최고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는 “세대 간 형평성을 따져보더라도 부담이 근로계층에 집중되는 소득세보다는 부유한 고령층이 함께 부담하는 부가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증세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정부의 제4차 재정추계에서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청년 세대는 “나중에 연금을 못 받을 것 같은데, 왜 지금 보험료를 내야 하나”라고 비판하고 있다.
기금이 고갈되면 지금처럼 연금을 쌓아뒀다가 주는 ‘적립식’을 포기하고 그해 걷어 그해 주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경우 그해 보험료는 고스란히 주 납부 대상인 청장년층의 부담이 된다. 증세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의 대안으로 거론된 이유다.
○ “조세 부담 늘리는 안이 미래 세대 부담 덜 줘”
또 다른 발제자인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이날 조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 연금 보험료율을 높이는 방안보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덜 준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순조세 부담액’을 이용해 이런 분석을 내놨다. 순조세 부담이란 국민이 내는 ‘세금 및 사회보험료 부담액’에서 국가가 주는 혜택인 ‘복지급여’를 뺀 것이다. 1990년생의 경우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조세 부담을 늘리면 생애 소득 대비 순조세 부담액 비율이 약 3%다. 반면 보험료율을 높이면 이 비율이 4%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증세를 통한 재원 마련에 부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이날 포럼에서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율을 24년 동안 1%포인트도 못 올렸다”며 “제도를 제대로 고치지 않고 국고를 투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증세를 통한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방안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며 논의 중인 아이디어 중 하나’라는 입장을 보였다. 앞선 8일에도 정부 주최 전문가 포럼에서 보험료율을 15%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기금 고갈 시점을 2073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내년 3월 제5차 재정추계 발표, 10월 개혁안 발표를 앞두고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국회와의 협력 등을 통해 연금개혁을 빨리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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