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소기업을 다니는 만 3세 아이의 아빠 정모씨(35)는 지난 9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6개월짜리 육아휴직을 신청했지만, 회사에선 한 달을 권유했다. 정씨는 회사에 복귀하겠다는 마음을 접은 후에야 계획대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정씨 회사에서 3년 전 처음으로 ‘아빠 육아휴직자’가 나온 이래 휴직을 떠난 아빠가 회사로 돌아온 경우는 아직 없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의 남성 국방부 장관이 육아휴직을 예고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국내 남성들의 육아휴직은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과거에 비해 확대되고는 있으나 그마저도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아빠 육아휴직은 줄어들었는데 회사 분위기, 낮은 임금 등이 난관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0~8세 유아의 부모 중 지난해 육아휴직을 시작한 사람은 17만3631명이며, 이 중 남성은 4만1910명이었다.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1년 전보다 8.0%(3097명)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71%는 직원 수 300명 이상 대기업 소속이다.
300명 미만 규모의 기업에선 모두 남성 육아휴직자 비중이 줄었다. 50~299명 기업은 1년 전 15.1%에서 14.5%로 줄었고, 5~49명 기업은 12%에서 10.5%로, 4명 이하 기업은 3.8%에서 3.2%로 하락했다.
실제 정씨처럼 중소기업을 다니는 아빠들에게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라고 한다.
올해 초 아빠가 된 이모씨(35)도 육아휴직 생각을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이씨는 “과거랑 달리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쓴다는 인식은 생겼지만, 여전히 여성 직원들보다 규모가 작아서 (남성 육아휴직은)이례적인 일로 본다”며 “써야 할 때가 왔을 때 회사와 조율할 생각을 하면 벌써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IT분야 중소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는 박모씨(36)도 “외주를 받아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보니 대기업에 비해 시간에 쫓기고 자유롭지 못하다”며 “내가 중간에 빠지면 다른 사람으로 갑자기 대체할 수가 없다. 인수인계도 힘들고 회사 사정상 다른 사람으로 바꿀 여력도 안 된다”고 답답해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기본급에 비해 추가 수당의 비중이 큰 경우도 많아 휴직 시 줄어드는 임금도 부담이라고 한다.
박씨는 “물론 유급 (육아휴직)이긴 하지만, 대부분 IT 회사가 포괄임금제를 하기 때문에 기본급은 낮은 편이다”고 했다.
김모씨(33)는 연봉의 20%가 수당으로 채워지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는 “기본급 자체가 작아서 유급이라고 해봐야 150만원도 안 나온다. 아내 월급도 많지 않아 그 돈으로는 가사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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