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69)가 2020년 백현동 민간업자에게서 받을 수 있게 된 70억 원을 둘러싼 자금 흐름을 수사 중인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2006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시장 선거 선대본부장을 지낸 김 전 대표는 2015~2016년 성남시의 백현동 사업 인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14년 성남시는 백현동 사업 민간업자인 아시아디벨로퍼 정모 대표(67)가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대해 낸 토지 용도변경 신청을 두 차례 반려했다. 성남시는 정 대표가 이듬해 1월 김 전 대표를 영입한 뒤 낸 3차 용도변경 신청은 수용해 토지 용도를 자연녹지에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준주거지로 상향해줬다. 이듬해 1월에는 임대주택 비율도 100%에서 10%로 축소해줬다.
성남시는 용도변경 신청 수용 당시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사업에 참여한다”는 민관 합동개발 조건을 걸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백현동 사업은 단순 민간개발로 진행됐고 개발이익 3142억 원은 모두 민간에 돌아갔다.
김 전 대표는 2020년 11월 법원 결정에 따라 올해쯤이면 정 대표에게 70억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김 전 대표가 이 중 30억 원을 지난해 초 서둘러 현금화한 사실이 알려져 그 경위와 자금의 용처를 두고 업계에서 의문이 제기돼 왔다.
● 김인섭, “오리역 사업하자”며 건설업자에게 30억 원 빌려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김 전 대표에게 지난해 초 30억 원을 빌려준 건설업체 대표 A 씨를 최근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A 씨에게 김 전 대표에게 돈을 빌려주게 된 경위와 자금의 용처 등을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A 씨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2020년 초 본인과 가까운 시행업자 연모 씨로부터 A 씨를 소개받아 그에게 “성남 분당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오리 사옥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LH 오리사옥은 토지 용도가 일반상업지역이라 아파트 등을 짓기 위해서는 백현동 사업과 마찬가지로 성남시의 토지 용도변경 인허가가 필요하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따르면 대장동 일당 중 한 명인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도 비슷한 시기 이 사업을 노리기도 했다. 연 씨는 당시 A 씨에게 김 전 대표를 “성남시를 꽉 잡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A 씨는 사업이 되겠다고 판단해 동업을 결심했고 2020년 5월 김 전 대표가 소유한 한국하우징기술 등기에도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해 초 김 전 대표는 A 씨에게 “곧 인허가가 나올 듯한데 내가 우선 30억 원이 필요하다”며 “아시아디벨로퍼에서 70억 원을 받을 게 있는데 이걸 담보로 해줄 테니 30억 원만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A 씨는 이에 응해 김 전 대표에게 돈을 빌려줬다.
A 씨는 동아일보에 “서로 사업을 같이하기로 한 처지니 이자를 받는 것도 이상해서 담보만 잡고 8~9개월 정도 뒤에 갚기로 하고 돈을 빌려줬다”며 “김 전 대표가 돈을 어디다 쓸 건지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전 대표가 이 대표 선대본부장을 한 건 당시에는 몰랐고 지난해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 담보로 잡은 ‘70억 채권’은 백현동 사업 대가
김 전 대표가 A 씨에게 담보로 제공한 ‘70억 원’은 김 전 대표가 백현동 사업에 기여한 대가로 정 대표에게 받을 수 있게 된 돈이다.
김 전 대표는 성남시의 백현동 사업 주요 인허가가 이뤄진 이후인 2016년 5월 정 대표에게 백현동 사업 시행사 지분 절반을 넘겨받아 본인이 최대주주가 되는 내용의 수상한 주식매매계약을 요구해 체결했다. 정 대표는 이후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버텼고 김 전 대표는 2017년 10월 “주식매매계약을 이행하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19년 10월 서울동부지법은 “정 대표가 287억 원을 지급받고 계약을 이행해 주식을 넘기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전 대표가 2015년 4월~2016년 4월 구치소에 수감돼 있었다. 계약이 김 전 대표의 백현동 개발사업에 대한 기여에 비해 유리한 내용으로 보인다”며 계약 체결 경위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어 서울고법이 심리한 항소심에서 정 대표 측은 “김 전 대표가 기여한 부분이 없고 주식매매계약은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결해준 것이라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 측은 본인이 수감 중에도 성남시 대관업무를 했고 준주거지 용도변경은 본인의 아이디어라는 내용의 증인진술서를 제출하는 등 “실제 내가 사업에 기여한 몫이 크다”고 맞섰다.
2020년 9월 재판부는 “정 대표가 김 전 대표에게 주식을 넘기지 말고 그 대신에 백현동 사업 수익의 2021 회계연도 배당이 이뤄진 뒤 70억 원을 지급하라”는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표는 계약 이행을 포기한 대신 올해쯤이면 정 대표에게 7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채권을 갖게 됐는데, 지난해 초 A 씨를 통해 이 중 30억 원을 현금화한 것이다.
● 경찰, 김인섭이 빌린 30억 원 용처 수사 중
김 전 대표가 “곧 인허가가 나올 것 같다”고 했던 오리역 사업은 A 씨가 돈을 빌려주고 나서도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백현동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A 씨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김 전 대표에게 30억 원을 상환하라고 독촉했다. 김 전 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돈을 갚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A 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을 통한 집행 절차에 들어갔고 올 1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김 전 대표의 정 대표에 대한 30억 원 채권을 묶어두고 A 씨에게 대신 이 돈을 받을 권한을 주는 결정을 내렸다. 정 대표는 올 초 법원 결정에 따라 A 씨에게 30억 원을 지급했고, 이와 별개로 김 전 대표의 아들 등도 만나 5억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최근 김 전 대표는 정 대표 측에 “70억 원 중 남은 35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수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김 전 대표가 지난해 초 현금화한 30억 원을 어디에 썼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 전 대표의 한 오랜 지인은 “70억 중 절반을 받았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A 씨에게 김 전 대표를 소개해준 연 씨를 불러 조사하는 등 이 자금의 용처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