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서울 명동과 홍대 거리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3년 만에 맞은 성탄절 전야(크리스마스 이브)를 만끽하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서울 도심 번화가마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찼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지역 상인회 등이 안전 관리에 나선 덕에 시민들은 큰 혼란 없이 연말을 보냈다.
◆노점상 휴업하고 안전요원 봉사…“상권 살아난 느낌”
오후 7시30분께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맞은편 거리에는 백화점 벽면의 전등 장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추운 날씨에 패딩과 귀마개, 장갑으로 중무장했지만 화려한 조명을 구경하며 밝은 표정이 많이 보였다.
인근 롯데영플라자 외벽에도 미디어파사드(외벽 영상)를 보려고 멈춰선 시민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던 한 여성은 “역시 바로 아래보다 이쪽이 잘 찍히지”라고 일행을 돌아보며 웃어보였다.
경광봉을 든 경찰관 두어 명이 “길이 혼잡하니 이동해달라”고 시민들을 유도하는 지하상가 입구를 지나 평소 길을 따라 두 줄로 늘어선 노점상들로 왕왕 세 갈래 길로 나뉘었던 눈스퀘어 앞 명동길은 널찍하게 열려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머리 위의 화려한 조명 빛무리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으려 멈춰 서는 사람들에 인파가 뒤섞여도 큰 불편 없이 행인들이 통행하고 있었다.
이는 명동 거리의 362개 노점상들은 중구청과 논의해 이날 전체 휴업에 들어간 영향으로 보인다. 노점상들은 휴업 뿐만 아니라 일일 안전요원으로 나섰다. 이날 자원봉사에 원래 25명이 지원했는데 40여명이 일찍부터 나와 인파를 분산시키고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인파가 뒤섞이기 쉬운 교차로마다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이나 경찰관들이 두어명씩 자리해 동선을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닭꼬치 노점을 운영하는 이강수(50)씨도 경광봉을 든 채 인파가 붐비는 사거리에서 안전 관리에 집중했다. 한 시민이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을 묻자 자세히 설명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씨는 “한동안 장사를 접었다가 저번달 중순부터 다시 노점을 열었지만 다들 이번엔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코로나 전인 2019년보다 붐벼서 명동이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명동성당 신도·방문객 북적…“미사 올 수 있어 행복”
명동성당 앞도 각 지역 사목회에서 온 신도들이 일일 봉사자를 맡아 요소요소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한무리의 봉사자들은 명동성당에서 내려오는 경사진 길에 진입하려는 행인들에게 연신 경광봉을 흔들며 “오른편 계단으로 올라가달라”고 안내하며 인파가 뒤섞이지 않는 데 부심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봉사자 김모(65)씨는 “얼마전 이태원 참사도 있었던 만큼 안전에 신경쓰고 있다”며 “150명 정도 나와서 안내하고 있다. 드나드는 동선도 나눴다”고 설명했다.
긴 계단을 올라서서 널찍한 명동성당 앞 마당에는 성당 건물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가족 단위 일행들과 커플들로 북적였다.
낙타를 탄 세 동방박사 초롱 형상 앞과 아기 예수가 태어난 구유를 묘사한 조형물 앞에도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이 몰렸다.
성당 한켠에는 자정에 열리는 성탄 대축일 자정 미사에 입장하려는 신도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오후 9시부터 입장한다는 안내판 앞에는 한 시간 전부터 신도들의 줄이 이어져 성당 측이 유도선을 설치해두기도 했다.
성북구에서 왔다는 장모(52)씨는 “춥지만 공기도 맑고 기다릴 만 하다”며 “오히려 가족들과 미사를 드리러 올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연인들 몰린 홍대…“추워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
홍대 거리에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렸지만 경찰과 지자체의 대비로 큰 혼란 없이 인파가 관리되고 있었다.
평소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악명높은 2호선 홍대입구역 9번출구 앞에는 오후 6시께부터 경찰관 대여섯명이 경광봉을 들고 포진해 있었다.
경찰관들은 “지하철을 탈 분들은 안쪽으로 이동해달라” “두줄로 통행해달라”고 외치며 질서유지에 나섰고, 행인들도 두갈래로 나뉘어 조심스럽게 통행했다. 지하철역 아래에서도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혹여 넘어지는 사람은 없는지 주시하는 모습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가벼운 복장으로 멋을 부리거나 빨간색 루돌프 뿔 머리띠를 쓴 커플이 많았다. 걷고 싶은 거리에는 버스킹 공연을 구경하는 인파가 곳곳에서 둥글게 모여섰고, 마이크를 든 버스커가 열창을 끝내자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울마당로 차 없는 거리는 서울 마포경찰서가 길 한 가운데 펜스를 설치해 드나드는 인파의 이동경로를 나눈 게 눈에 띄었다.
일정 구간별로 맞은편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펜스 사이를 열어놔 시민들은 별 어려움 없이 연도에 있는 타로점 가게, 옷가게 등지로 구경하러 드나드는 모습이었다.
은평구에서 여자친구와 놀러 온 박수진(23)씨는 “처음 홍대역에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손 놓으면 잃어버리겠다 싶었는데 올라오면 괜찮은 것 같다”며 “좀 춥지만 그래도 나오니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경찰 656명 기동대 8개 부대 투입…집회도 이어져
경찰청은 성탄절 주말 서울 명동·강남역·홍대, 부산 광복로, 대구 동성로 등 전국 37곳에 50만여 명이 운집할 것으로 관측하고 인파 관리를 위해 경찰관 656명과 기동대 8개 부대를 배치했다.
한편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도심 곳곳에선 진보·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오후 4시부터 숭례문 앞에서 주최측 추산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정권 퇴진 집회를 열었고, 자유통일당과 신자유연대도 각각 동화면세점 앞과 삼각지역 인근에서 맞불 집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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