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실족해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검찰이 이씨의 사인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9일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씨가 바다에 빠질 당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 자진 월북으로 보기 어렵다”며, “긴밀한 가족관계나 차가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당시 살아 있었던 삶의 의지 등을 종합할 때 실족 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자진 월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로 당시 바다 유속이 시간당 2.92㎞~3.51㎞로 성인 남성 수영 속도(시간당 2㎞)보다 빨라 원하는 방향으로 수영하기 어렵고, 최초 발견지점이 배에서 27㎞ 떨어져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당시 배에 수영수트나 오리발, 개인 방수복 등 장비들이 있었는데 이를 이용하지 않은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봤다.
아울러 이씨의 가족 간 유대관계가 원만하고 신분이 안정적인 공무원인데다, 북한에 대한 동경이나 관심을 보인 정황이 없었던 점도 자진 월북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또 이씨가 발견 당시 한자(중국어)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무궁화 10호에 비치된 구명조끼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진 월북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면 구명조끼를 입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사건 발생 당시에도 다른 국가기관 역시 동일한 정보로 자료를 분석해서 자진 월북의 근거로 보기 어렵고, 다른 자료를 종합하더라도 자진 월북 여부는 불명확하다고 분석 보고한 바 있다고 검찰은 밝혔다. 여기서 검찰이 언급한 국가기관은 당시 국가정보원으로 알려졌다.
또 수사 과정에서 국방부 등 관계기관 실무자들도 같은 내용으로 자진 월북으로 이해하긴 어렵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이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노은채 전 국정원 비서실장을 첩보 삭제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숨진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의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삭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 사회에서 국가에 의해 자진 월북자라고 규정되는 것은 당사자 본인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들에게도 월북자의 가족이란 낙인을 남길 수 있다”며, “국가가 자진 월북자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사법절차에 준하는 충분한 절차와 신중한 판단,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사건 직후 정부는 이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있다는 첩보를 근거로 ‘자진 월북’으로 판단해 발표했다. 검찰은 관련 첩보와 보고서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지시로 삭제됐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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