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서 갑자기 불이 나더니 터널 전체로 순식간에 불이 확산됐습니다. 온힘을 다해 밖으로 뛰어나왔어요.”
29일 오후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나들목(IC) 인근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목격자 박모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긴박했던 화재 당시를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문가들은 가연성 재질의 방음벽으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 “방음터널을 불연소재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43개의 방음터널이 있다.
● “순식간에 불길 확산”
화재 당시를 찍은 영상을 보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갓길을 포함해 왕복 8차선 도로가 모두 화염에 뒤덮인 상태인데 터널 입출구로는 검은 연기가 하염없이 배출되는 모습이다. 방음터널 천정이 열기에 녹아 뚝뚝 떨어지는 모습도 영상에 담겨 있다.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탈출했다는 심모 씨는 “터널에 막 접어드는데 폭발 소리가 나면서 차가 정체되기 시작했고 연기가 터널 밖으로 밀려나왔다”며 “후진을 해서 겨우 나오긴 했지만 못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500여m 정도 떨어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김모 씨는 “불과 연기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며 “실내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놀라서 밖으로 뛰쳐 나올 정도였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폐기물 수집 집게 트럭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 트럭 운전기사 이모 씨(63)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처음에는 불이 붙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엔진에서 불이 나 차량이 자동으로 멈춰서자 하차 후 차량에 있는 소화기 2개로 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불이 꺼지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했다. 불은 이후 방음터널의 플라스틱 재질 구조물에 빠르게 옮겨 붙어 피해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가연성 소재가 불길 키워
이번 화재는 플라스틱 소재 방음벽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불이 난 터널의 방음벽은 알루미늄 철골 구조에 반투명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로 제작됐다.
방음터널에는 강화유리가 많이 사용되지만 PMMA이 더 가볍고 설치가 쉬워 최근 방음벽 재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가격도 강화유리보다 저렴한 편이다. 투명 재질이어서 시야 확보고 가능하다.
문제는 휘발성 유기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화재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불이 붙은 PMMA은 유독가스를 다량 내뿜어 질식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방음터널에는 불연 소재를 사용하는데 한국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방음시설 안전기준도 미비
교통소음 저감 목적의 방음시설은 환경부 기준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기준 자체에 안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소음진동관리법 관련 조항을 살펴본 결과 화재와 관련한 내용은 ‘방음시설에 사용되는 재료, 시험방법 및 재질 등은 한국산업규격(KS)에서 정하는 방음판 종류별 규격에 적합하거나 동등이상의 재료로 하여야 한다’, ‘방음시설은 가급적 방음효과가 우수하고 사후관리가 편리하며 내구성, 내화성이 좋은 것으로 한다’ 등 두 가지뿐이었다. 고용노동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방음판 재질 및 성능을 화재 안전성(불연성)을 고려해 선정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과천=이경진 기자 lkj@donga.com 과천=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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